“부끄럽지만 어려운 사람 돕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6일 03시 00분


사형수가 세상에 내놓은 ‘사랑 한조각’
10여년 모은 영치금 300만원 기부
이규상 씨 “어두운 기억 다 내려놔”

사형수가 10여 년 동안 한 푼씩 모은 영치금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다. 살인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구치소에서 11년째 복역 중인 이규상 씨(42)가 주인공. 이 씨는 그동안 꼬박꼬박 모아온 영치금 300만 원을 6일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맡겼다.

이런 사실은 이 씨가 사형수 교화승(僧)인 부산 자비사 박삼중 스님에게 최근 보낸 편지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삼중 스님과 이 씨는 8년 전 처음 만난 뒤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이 씨는 편지에서 “부끄러운 액수이지만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보시하게 됐다”고 기부 동기를 밝혔다. 그는 “다시는 저와 같은 사람이 없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15일 편지를 공개한 삼중 스님은 “수십 년 동안 교도소 교화활동을 해오면서 사형수들에게서 수많은 편지를 받았지만 이렇게 뜨거운 감동을 느끼기는 처음”이라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심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형수의 기부가 사회에 훈훈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씨는 가난으로 인한 좌절과 분노 속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돈이 없어 수업 준비물을 챙겨가지 못해 선생님에게 항상 혼나고 소풍 한 번 제대로 가본 적 없었다. 홀어머니와 함께 가난의 굴레를 뒤집어쓰고 사는 힘든 삶은 이 씨의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주먹을 휘두르기 일쑤였다. 급기야 30대 초반에는 살인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10년 전 그의 노모는 아들을 살리고자 멀리 부산 자비사까지 두 번이나 찾아와 “불쌍한 자식 놈을 한 번만 만나 달라”고 통사정했다. 하지만 스님은 그때마다 이를 깜박 잊었고, 그사이 이 씨의 노모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삼중 스님은 “어느 날 서울구치소에 들렀다가 한 사형수가 다가와 ‘스님을 찾아갔던 사람이 제 어머니인데 얼마 전 돌아가셨다’고 말해 큰 충격을 받았다”며 “허튼 약속을 한 죄책감 속에 이 씨를 자식으로 삼기로 맹세하고 오늘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편지에서 그토록 저주하고 싶었던 기억들을 모두 내려놓고 이제는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고 싶다는 심경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지은 죄를 참회하고 좋아하는 연필화를 더욱 열심히 공부해 스님에게 꼭 효도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중 스님에 따르면 이 씨는 교도소 안에서 교통사고를 내고 들어온 어려운 운전자를 위해 벌금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여성 수감자들에게는 기저귀를 보내 주는 등 꾸준히 교화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편지 말미에 ‘서울국립선원에서 혜담(慧潭) 합장’이라고 적었다. ‘서울국립선원’은 서울구치소를 이르며 ‘혜담’은 그의 법명이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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