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시간이면 닿을 서울, 오는 데 6년 걸렸죠”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1일 03시 00분


두차례 목숨 건 탈북… 中베트남 러 독일 4개국 유랑…‘北인권과 통일’ 강연 백강운 씨“한국대사관 외면때 가장 절망”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 걸리지도 않는데, 저는 여기 오기까지 6년이 걸렸네요.”

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 청소년들이 이야기하는 북한인권과 통일’ 강연회에는 ‘청소년’으로 보기에 나이가 많은 청년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백강운 씨(가명·26)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백 씨는 2003년 탈북한 지 6년이 된 지난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가 한국으로 오기 위해 거쳤던 나라만 중국, 베트남, 러시아, 독일 등 4개국. 백 씨는 25일 한국외국어대에 입학해 새내기가 된다.

“일곱 살 때 공개처형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한 사람당 총을 세 발씩 쐈는데 바로 앞에서 피를 쏟으면서 쓰러지더군요. 그 이후 하루 종일 밥을 못 먹었습니다. 스무 살 때까지 그런 공개처형을 세 번 봤습니다.” 북한에서는 청소년들도 ‘총살 공지’가 나오면 공개처형을 봐야 했다.

봄과 가을이 되면 농촌에서 농사일을 했다. 겨울엔 더 자를 나무도 없는 민둥산에 올라가 배정된 땔감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그게 열악한 환경인지 몰랐죠. 그러다 열네 살 때 남한 라디오를 몰래 들었어요. 그제서야 ‘밖은 자유롭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

스무 살 겨울, 백 씨는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넜다. 군대를 탈영한 후 대책 없는 탈북이었다. 어설픈 탈북자는 일주일 만에 북한 보안당국에 잡혔다.

백 씨는 수용소에 있던 2003년 6월 다시 탈북에 나섰다. 이번엔 거의 산에서 살다시피 하며 사람들을 피했다. 중국어를 배운 다음 다롄(大連), 상하이(上海) 등 중국 대도시로 숨었다. 그러다 탈북자들이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으로 송환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

가족들을 놔둔 채 홀로 탈북에 성공한 백 씨는 바로 배를 타고 베트남으로 밀항했다. 2005년 여름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까지 갔지만 거기서 베트남 경찰에 붙잡혔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한국대사관 관계자를 만났지만 정작 대사관 측은 “우리는 책임질 수 없다”는 말만 했다. 백 씨는 다시 중국으로 송환됐다.

그는 “대사관 안으로 데리고 가 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때는 죽고 싶을 만큼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백 씨는 이후 러시아와 독일을 거쳐서야 국제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6년 동안 외국을 떠돈 백 씨가 느낀 남북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는 이날 토론회에서 “대학 입학이 결정되면서 가입한 한 북한 관련 동아리에서 남한 학생들이 ‘북한의 최대 명절은 설’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며 “북한의 최대 명절은 김정일과 김일성 생일인데 지금 한국 학생들은 그런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남북한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 동영상 = 탈북청소년들의 창작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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