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인연맺은 네쌍둥이 간호사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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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16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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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형편이 어려워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무료로 수술을 받고 태어난 네 쌍둥이 자매가 모두 이 병원 간호사로 일하게 됐다. 주인공은 황슬(21), 설, 솔, 밀 씨로 이 가운데 슬과 밀 씨는 25일 경기 수원여대 간호학과를, 설과 솔 씨가 18일 강원 강릉영동대 간호학과를 각각 졸업한다. 이들 자매는 16일 인천 남동구 구월동 가천의대 길병원에 신입 간호사로 합격한 38명과 함께 나란히 첫 출근했다.

●이길여 회장과의 인연

이들이 태어난 것은 1989년 1월 11일. 출산 예정일을 3주 가량 남겨 두고 인천의 친정을 찾은 어머니 이봉심 씨(56)의 양수가 갑자기 터져 길병원 응급실에 실려 왔다. 당시 길병원 이사장이던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은 즉시 의료진에게 제왕절개수술을 지시해 쌍둥이들은 위기를 넘기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들의 아버지 황영천 씨(56)가 강원 삼척시의 한 탄광에서 일해 수술비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딱한 사정을 들은 이 회장은 수술비 등을 일절 받지 않았다. 대신 퇴원하는 이 씨에게 산후조리를 잘하라며 생활비를 쥐어주며 "네 쌍둥이가 건강하게 자라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면 등록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쌍둥이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뒤 이 회장과 쌍둥이들은 서로를 까맣게 잊고 살았다. 2007년 1월 우연히 사진첩을 정리하던 이 회장은 네 쌍둥이와 찍은 사진을 보다가 18년 전 약속을 떠올렸다. 이들의 근황을 수소문한 끝에 경기 용인시에 살고 있는 쌍둥이 가족을 찾았다.

그러나 아버지 황 씨가 척추협착증을 앓으면서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게다가 2개 대학의 수시모집 전형에 합격한 네 자매는 등록금을 낼 길이 막막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 회장은 다시 이들을 불러 등록금 2300만 원을 주며 격려하고, 또 한 가지 선물을 줬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너희들 모두를 길병원 간호사로 뽑겠다"고 약속한 것. 그는 "네 쌍둥이가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면 환자들은 한 간호사가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바쁘게 병동을 다니면서 환자를 돌보는 줄 알 것"이라고 농담하며 등을 두드려 돌려보낸 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매년 등록금을 전액 지원했다.

● "가슴이 뜨거운 간호사 될 것"

네 쌍둥이는 이 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수한 성적으로 3년간의 학업과정을 마치고 1월 치러진 제50회 간호사 국가고시에 모두 당당히 합격한 것. 소식을 들은 이 회장은 기뻐하며 3년 전 약속대로 이들을 길병원 간호사로 채용했다.

수원과 강릉에서 흩어져 살던 이들은 취업이 결정되자 최근 길병원 인근 방 3칸짜리 다세대주택으로 이사했다. 16일 하얀 가운을 입고,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네 쌍둥이의 얼굴은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이 병원 양인순 간호부장에게 기본업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병원을 한바퀴 돌아보며 간혹 환한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이들을 집무실로 불러 쌍둥이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과 자신이 의사로서 걸어 온 인생을 들려주며 환자를 상대하는 간호사의 올바른 마음가짐에 대해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이들에게 21년 전 출생 당시 촬영한 사진을 축하선물로 줬다.

이들은 앞으로 병원에서 한 달 동안 간호사 입문교육을 받은 뒤 희망 근무부서에 배치된다. 일란성 쌍둥이라 외모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황슬, 솔 씨는 마취과를, 설과 밀 씨는 신장내과를 각각 지원했다. 네 쌍둥이의 맏이인 황슬 씨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이 아프신 걸 봐오면서 네 자매가 모두 간호사가 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게 꿈이었다"며 "이 회장께서 우리 자매와의 약속을 지켰듯이 우리도 이 회장께 약속한 '가난한 이웃을 더 배려하는 가슴이 뜨거운 간호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일란성 네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힘든데 모두 한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라며 "부모에 대한 효심이 지극해 환자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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