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금 대사 중 ‘소리’ 뜻 몰라 오역”

  • 동아닷컴
  • 입력 2010년 2월 19일 03시 00분


10년간 한국드라마 80여편 중국어로 번역 대만출신 둥원쥔 씨

10여 년간 한국 드라마 80여 편을 번역해 중화권에 소개해 온 둥원쥔 씨. 2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그는 “번역은 문화 전파의 매개자”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10여 년간 한국 드라마 80여 편을 번역해 중화권에 소개해 온 둥원쥔 씨. 2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그는 “번역은 문화 전파의 매개자”라고 말했다. 사진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어는 길고, 중국어는 짧아요. ‘안녕하세요’도 중국어로는 ‘니 하오’죠. 그럼 더빙번역일 경우 입 모양이 안 맞아요. 그러니 ‘니 하오’ 대신 글자 수에 맞게 ‘칭 톈 하오’(‘날씨가 좋다’는 뜻의 인사말)라고 번역을 해야 하죠.”

‘명성황후’ ‘대장금’ ‘장희빈’ ‘황진이’ ‘풀하우스’ ‘상두야 학교가자’ ‘커피프린스 1호점’…. 이 모든 드라마를 중국어로 번역해 중화권에 소개한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대만 출신의 둥원쥔(董文君·50) 씨다. 10여 년간 80편이 넘는 드라마를 번역했다.

둥 씨는 2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논문 ‘한국드라마의 중국어 번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번역은 문화의 매개자”라는 그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완전히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나온다는 생각에 2006년부터 한국에 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둥 씨는 한국 고전소설을 전공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번역할 때는 고전소설 속에도 남장 여자가 자주 등장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옛 여인들을 그린 고전소설도 읽었다. 그는 “이런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극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드라마, 고전소설을 통틀어 한국 여성들이 강인하게 그려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의 강점은 흡인력 있는 대사예요.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중화권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기 힘들죠.”

둥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대만정치대로 진학했다. 대학을 나온 뒤 한국 기업의 대만지사에서 근무하다 1990년대 말부터 드라마 번역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2006년에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번역에 실수를 한 적도 있다. “‘대장금’(2004년) 중에 연생이가 ‘우리 마마님은 소리도 하셔’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어요. 그 ‘소리’가 판소리라는 것을 몰라 다른 말로 대체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어요.”

의학드라마 ‘뉴하트’를 번역할 때는 의학 용어가 모두 영어로 나와 고생했다.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영어 단어의 정확한 표기를 찾고 다시 중국어 음역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둥 씨는 “70분짜리 드라마 번역에 7시간 정도 걸리는데 외래어가 많으면 하루 한 편 끝내기가 벅찰 때도 많다”고 말했다. ‘방심’ ‘심각’처럼 똑같은 한자어인데 중국어와 한국어의 뜻이 다른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번역의 질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방송국들이 판권을 판 뒤에는 현지에서 어떻게 번역하고 방영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둥 씨는 이달 말 학위 수여식을 마친 뒤 대만으로 돌아가 번역 일을 계속 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좋은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대만 대학생들이 한국 문화와 역사를 배울 때 유용한 책도 번역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