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름 달랜 ‘바보 몸짓’… 이제 누가 우리의 눈물을 닦아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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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내 맘속의 코미디언’ 배삼룡 선생을 추모하며

우는 아이, 우는 어른들에
웃음의 선물 전해주신 그분

우리를 위해 하루하루
더 절절한 바보가 되신 그분

먼길 가심에 고마움의 꽃을…


“새봄을 맞아 각 방송국은 앞을 다투어 창경원 야외무대에서의 공개방송을 진행하는데 KBS TV가 첫 테이프를 4월 16일 낮 2시부터 끊는다. 4시까지 이어지는 이 새봄맞이 공개방송특집은 노래 무용 창과 코메디로 엮어지는데 출연자는 최희준, 하춘화, 이미자, 펄시스터즈, 김상희, 문정선,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박초월, 묵계향 제씨.”(1972년 4월 5일 동아일보)

1972년이면 내가 중학교 1, 2학년 때쯤 기억이 아스라한 시간이다. 몇 줄 기사를 읽는 순간 봄의 창경원의 벚꽃, 아이들의 웃음소리, 시골에서 올라온 어르신들의 옷자락 소리 그리고 수줍은 얼굴로 웃기만 하는 청춘남녀의 발그레한 미소가 저절로 그려진다. 그 많은 사람이 머리에 가슴팍에 희디 흰 벚꽃 한두 송이를 꽂은 채 같은 곳을 바라본다. 모두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얼굴은 버짐 꽃이 벚꽃의 눈치를 보며 살그머니 피어나며, 애써 단장한 옷매무새는 봄바람에 설핏 제 자랑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의 온몸 가득 웃음이 흐른다. 바로 저 사람, 저 바보 때문에!

나라님도 즐겁게 해주지 못하고, 권세 있는 자도 알아주지 않고, 배운 자도 모른체 하고, 부자님도 귀 막는 세상이지만… 민초들은 저 사람 때문에 웃는다, 어제의 서러움을 한 바보의 어수룩한 연설 한 마당에 허허 날려버린다, 그제의 씁쓰레함을 바보의 황당한 미끄러짐에 박수로 털어버린다. 조금 전의 괴로움을 솜사탕과 함께 녹여버린다. 그리고 뻔하디뻔한 내일의 추레함에 대해 지금 이 순간만큼은 호통친다. 우리에겐 저 사랑스러운 바보가 있으니까!

누가 이 사람들을 이리도 녹녹히 위로하고, 이렇게 다정히 어루만져주는가? 좀 살펴보자, 아니, 저 바보가? 설마 바보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단 말이야? 웃게 한다고? 그래서 그 바보를 기다린다고? 나라님 앞에서 충 먹은 머리를 숙이지만 헤진 옷 안의 가슴속으로는 바보에게 존경심을 표한다고? 도대체 그 바보가 누구야?

―바보, 여기 왔소이다! 나는 바보 삼룡이올시다!

―너는 뭐하는 자이더냐?

―난 그냥 바보이외다. 바보에게 뭘 묻다니, 당신이야말로 바보군요, 허허허….

레슬링 선수 김일 때문에 통쾌했고, 마루치 아라치 때문에 신났으며, 바보 배삼룡 때문에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웃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마음 놓고 터뜨릴 수 있으며, 공장 재봉틀 바늘에 손가락이 찔려도 웃을 수 있었다. 아직 갓을 쓰고 버선을 신은 어르신들도 안 보듯 곁눈으로 흑백텔레비전 속에서 온몸을 흔들며 무결점 영혼을 가진 듯한 바보를 훔쳐보았다.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것 외에는 가난에서 벗어날 별다른 방법이 없는 그 시간 속의 사람들….

그 모두에게 ‘바보’라는 환호성과 박수를 한꺼번에 받은 배삼룡, 그는 엄연한 예술가이자, 한국 희극인의 대부였다. 지금은 개그, 개그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코미디, 코미디언’이라 하였다. comedy, 즉 희극은 넓은 의미로는 웃음을 유발하는 모든 연극을 일컫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소극(farce)과 구별하여 문학적으로 수준 높은 해학극을 말한다. 희극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Komoidia’인데, 이것은 Komos(잔치)의 Oide(노래)라는 뜻이다. 즉 희극은 주신 디오니소스 축제 때 풍자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평소에 불쾌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을 비꼬기 위해 흉내를 내거나 주위의 구경꾼과 간단한 응답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듯하다고 한다.

코미디의 정신이 이러하기에 현대사회에서는 코미디를 통해 인간의 모순이나 사회의 불합리성을 해학적, 풍자적으로 표현하여 따끔한 가르침이나 간절한 호소, 암묵적 동의를 얻어내거나 유발하는 역할을 해내기도 한다. 펜이 칼보다 강하듯, 위협적인 외침이나 선동적인 구호보다는 웃음의 통로를 통과한 촌철살인의 말과 아무 짓도 못할 것 같은 바보나 조금도 위험할 것 같지 않은 밑바닥 인물을 내세운 어설픈 몸짓이 더욱 강력하면서도 끈끈하게 사람의 마음과 머리를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그것의 전파력은 어떠한 통제도 받지 않고, 설령 한다 해도 머리도 꼬리도 잡지 못한 채 더욱 멀리, 빠르게, 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 법!

정월대보름이 며칠 남지 않은 2월의 한 날에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래서 더더욱 그가 그리워진다. 설날 추석 정월대보름 같은 날이면 그는 마치 산타할아버지처럼 우리에게 웃음선물을 한가득 짊어지고 찾아왔다. 그러나 그는 산타할아버지와는 성정이 너무도 다르다. 그는 우는 아이에게, 울고 있는 어른에게 더 많은 선물을 주었다. 그리고 더 울고, 더 우세요, 그리고 눈물마저 마르면 차라리 웃으세요, 라며 다정히 안아주었다. 그런데 이제 누가 우리의 눈물을 닦아줄까? 이제 세상은 바보 말고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우리를 위해 하루하루 더 절절한 바보가 되려고 노력했던 배삼룡 선생. 그 시대의 청소년이었던 우리들, 그분의 말소리 몸짓 하나 하나를 따라하며 즐거워했던 우리들…. 그분의 먼 길 가심에 고마움의 꽃을 공손히 내려놓는다.

노경실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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