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전 찍었던 ‘꿈’보니 꿈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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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4일 03시 00분


신상옥 감독 세번째 작품 ‘꿈’ 원판 필름 찾아
당시 주연 최은희 씨 “말에서 떨어진 일 생생”

고 신상옥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꿈’(1955년)의 16mm 복제용 원판 필름이 발견됐다. ‘꿈’은 80편에 이르는 신 감독의 영화 가운데 세 번째 작품이자 고인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지난해 8월 개인 소장자에게서 제보를 받아 ‘꿈’을 비롯한 1950, 60년대 영화 필름 6편을 구입했다고 3일 밝혔다. 신 감독의 데뷔작 ‘악야’(1952년)와 두 번째 작품 ‘코리아’(1954년)는 필름이 전해지지 않으며 그의 작품 80편 가운데 19편이 유실된 상태다. 이날 서울 마포구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꿈’의 주연 배우이자 신 감독의 부인인 최은희 씨(84·사진)와 영화평론가 김종원 씨(73)가 참석했다.

3일 공개된 고 신상옥 감독의 초기 작품 ‘꿈’. 춘원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신 감독의 부인인 배우 최은희 씨(누워 있는 사람)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3일 공개된 고 신상옥 감독의 초기 작품 ‘꿈’. 춘원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신 감독의 부인인 배우 최은희 씨(누워 있는 사람)가 주연을 맡았다. 사진 제공 한국영상자료원
이병훈 한국영상자료원장은 “광복 후 1946∼1955년 제작된 110여 편의 한국영화 가운데 필름이 보존된 영화는 10편이 채 안 된다”며 “이 작품은 당대 한국영화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춘원 이광수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꿈’은 승려 조신이 시주하러 온 고관집 딸 달례와 사랑에 빠져 함께 도망쳤다가 달례의 약혼자에게 죽임을 당하는 순간 잠에서 깬다는 내용으로 ‘인생무상(人生無常)’의 관념을 보여준다. 신 감독은 1967년 이 작품을 스스로 리메이크했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씨는 “‘꿈’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년) ‘벙어리 삼룡’(1964년)으로 이어지는 신 감독의 탐미주의적 문예영화의 시초”라며 “신 감독의 연출 초기 특징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은희 씨의 5번째 출연작으로 당대 신인으로서 최 씨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최 씨는 “수십 년 전 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하고 가슴이 설레 밤잠을 설쳤다”며 “아무것도 없던 1950년대 상황에서 ‘꿈’을 만들었다니 지금 생각하면 꿈만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배우라는 직업이 정말 좋고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영화를 1955년 1월 개봉 이후 55년 만에 다시 본다고 했다.

최 씨는 ‘꿈’을 촬영하다 말에서 떨어지는 장면에서 땅에 머리를 부딪쳐 기절했던 에피소드도 공개했다. “나중에 정신이 드니 모든 사람이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습니다. 난 생명을 걸고 연기한 건데 왜 끝까지 카메라를 돌리지 않았느냐고 신 감독에게 시비를 걸었지요. 그때 만일 뇌진탕이었으면 (저세상으로) 갔을 겁니다.”

최 씨는 또 “신 감독의 데뷔작인 ‘악야’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점은 아쉽다”며 “부부의 키스 장면에서 여자가 (까치발로) 키를 높이는 모습을 카메라로 잡았는데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시도였다”고 말했다.

이 밖에 ‘옥단춘’(감독 권영순) ‘처와 애인’(김성민) ‘들국화’(강찬우) ‘흑룡강’(이만희) ‘쾌걸 흑두건’(장일호) 등 함께 수집한 다른 감독의 영화는 필름 일부만 발굴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꿈’의 훼손 부분을 보수해 35mm 필름으로 확대 복원한 뒤 5월 18일∼6월 13일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개관 2주년 기념 기획전’에서 상영할 예정이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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