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외제 차와 진귀한 외국 음식, 실크 카펫, 심장박동 수를 측정하는 모니터까지…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의 호화 생활은 나무껍질로 연명하는 국민들의 삶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16년 동안 잠적해 왔던 전직 군수담당 정보요원 김종률 전 북한대좌(75·사진)가 4일 김일성 주석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폭로하는 ‘독재자들의 봉사자(Im Dienst des Diktators)’라는 책을 내고 빈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김 씨는 1994년까지 20여 년간 오스트리아 등 유럽에서 산업 군수물자를 북한에 조달하는 역할을 하다 94년 김 주석 사망 직후 조국을 등졌다.
김 씨에 따르면 김 주석은 크리스털 샹들리에, 실크벽지 등으로 장식된 10여 개의 초대형 빌라를 갖고 있었다. 이 중 몇 채는 지하에 지어졌으며 핵 공격에 대비해 환기 시스템까지 설치됐다. 대궐 같은 집에서 김일성과 가족들은 성찬으로 향연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김일성은 외국 음식만 먹었으며 빈에 외국산 특식만 공급하는 수행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 주석의 이 같은 식습관 때문에 북한 당국이 요리사들을 오스트리아의 요리학교와 유명 레스토랑에 보내 조리법을 배워오도록 했다고도 한다.
그는 서구 부패와 제국주의를 비난하던 김 주석이 벤츠와 포드, 캐딜락 등 호화 외제차를 수집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이어 “빠른 스포츠카를 좋아하는 아들 김정일은 아버지의 열정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1990년대 초 김 주석은 벤츠 200의 북한 버전을 만들라고 지시하기도 했다는 것. 북한이 구매하는 장비들은 약 30%의 프리미엄까지 얹어 주었기 때문에 외국 중개상인들이 너도 나도 북한에 물건을 대려고 혈안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방사선과 폭발물 탐지기, 레이저 계측장비 같은 각종 특수장비가 이런 식으로 북한에 반입되었다고 한다.
16년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94년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독재 체제가 몇 년 안에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죽은 것으로 위장해 아내와 두 아이가 있는 조국을 등졌지만 오산이었다”고 했다. 그는 “책을 내기 전까지는 눈감고 죽을 수 없었다”며 “북한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암살을 당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고 말했다. 그는 곧 오스트리아에 망명 신청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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