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들이 잘 안 들여다보는 북한 역사 중에서도 정권 수립 초기 현대사를 연구하느냐고요? 한국 역사에 대한 열정 때문이죠. 하지만 진짜 이유를 대보라면…. 아마 전생에 한국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9일 오후 미국 워싱턴 외교안보전문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만난 벽안(碧眼)의 청년은 북한근현대사 연구를 업(業)으로 삼게 된 계기를 묻자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이같이 답했다. 주인공은 제임스 퍼슨 씨(사진). ‘해방군’을 자처하며 한반도 북쪽에 진주한 소련군이 1945년 8월 이후 5개월간 보여준 수탈의 현장을 생생히 기술한 러시아 문건(본보 3월 10일자 A6면 보도)을 발굴해 냈다.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인 퍼슨 씨는 평양에 상주 대사관을 설치했던 옛 공산권 국가들의 외교문서 중 최근 비밀이 해제된 1차 자료를 발굴해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조지워싱턴대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1953부터 1967년까지의 북한정치 및 이념체제의 형성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다. “평생 북한 현대사 문서와 씨름하며 살면 행복하겠다”는 그는 기회가 되면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싶다고도 했다.
―왜 북한 현대사인가.
“러시아 모스크바시립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옛 소련의 한반도 전략(1945∼1950년)을 공부했다. 당시 러시아 문헌을 통해 광복 이후 북한의 국가 형성 과정과 노동당의 창립을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 등을 연구하면서 감춰진 북한 근현대사에 매력을 느꼈다. 애초에는 소련의 외교정책 연구로 시작했지만 공부를 하다 보니 북한의 국내정치가 더 재미있었다.”
―북한 문서를 얼마나 많이 찾아냈나.
“현재까지 발굴한 문건이 총 6만 쪽이나 된다. 하지만 현재까지 번역한 것은 이 중 오직 2%뿐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비밀 중 아직도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중국어 러시아어 헝가리어 체코어 루마니아어 문서 등 소스도 무궁무진하다.”
―처음 문서를 찾아낸 과정이 궁금하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러시아에서 석사학위 공부를 하는 동안 국립문서보관소에 아예 살다시피 했다. 그곳은 블랙박스와도 같은 북한의 근현대사를 새롭게 조명해 줄 수 있는 문서의 바다(sea of documents)다. 진실에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는 지적 도전은 가장 재미난 일이었다.”
―소련 군정 문건의 의미를 평가한다면….
“소련군이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이었다는 점 외에도 북한 진주 당시 그들이 얼마나 비조직적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문건이다. 북한 사람들에게는 한마디로 불쾌한 경험이었다. 35년을 노예로 살았으니 좀 더 노예로 있게 하자고 한 소련군 장교의 발언은 매우 모욕적이다.
―올해는 6·25전쟁 발발 60주년인데….
“윌슨센터는 현재 6·25전쟁과 관련해 새로운 문서를 종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동유럽권 국립문서 보관소들의 협조를 받아 300쪽 분량의 책자가 곧 완성된다. 5월 말로 예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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