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동양화가인 고암 이응로 선생(1904∼1989)이 57년 전에 가졌던 개인전의 방명록이 발견됐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 주지 옹산 스님은 고암의 작품 소장가인 홍세영 씨가 ‘수덕사 선(禪) 미술관’ 개원을 축하한다며 이 방명록을 기증해 왔다고 4일 밝혔다. 수덕사는 고암의 작품 등을 전시하기 위해 지난달 26일 사찰 안에 선 미술관을 열었다.
이 방명록은 1953년 8월 8일 서울 중구 소공동 성림다방에서 열린 고암 개인전을 찾은 관람객들이 기록한 것이다. 화선지 여러 개를 붙여 만든 폭 30cm, 길이 8m짜리의 방명록에는 ‘영원히 새로운 조선(朝鮮) 미(美)의 고향입니다’ ‘동양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주셨다’ 등 고암에 대한 축하와 격려, 기대를 담은 많은 명사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그림에 나타난 선생의 위대한 창작력과 인내력은 우리 수도 재건의 원동력이 될 줄로 믿습니다’ 등 휴전 직후 시대상을 엿보게 하는 메시지도 적지 않았다.
고암과 교류한 화단 거장들의 순간 터치도 눈길을 끌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온 ‘서민 화가’로, 그리고 국내 최고 경매가를 기록한 작품 ‘빨래터’ 등으로 잘 알려진 박수근 화백은 지인들이 모여 앉아 탁주를 마시는 듯한 모습의 스케치를 방명록에 남겼다. 박수근미술관 엄선미 학예사는 “고암에게 많이 의지했던 박 화백은 고암이 프랑스 등에 있을 때는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고, 서울에 있을 때는 탁주를 같이 많이 마신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1945년 창간된 ‘서울타임즈’에 만평 ‘코주부’를 연재한 당대의 대표 만화가 김용환 화백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의 서양 신사를 코믹하게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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