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오랫동안 몸이 아팠다. 피부 쪽 질병이라고만 했다. 큰 병원 의사들도, 오래 공부했다는 학자들도 아들의 정확한 병명을 얘기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장남을 살리려고 ‘별짓’을 다했다. 용하다는 의원은 다 찾아갔다. 약이란 약은 다 먹여봤다. 하지만 생때같던 아들은 야속하게도 1993년 부모의 품을 먼저 떠났다. 한창 미팅도 하고 캠퍼스를 누볐어야 할 동국대 국문과 재학시절 그렇게 사망했다.
이찬우 씨(74·서울 용산구)는 아들 시신을 서울대병원에 기증했다. “앞으로 아들과 같은 병을 앓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치료에 도움이 되길 바랐어요. 가족 아무도 모르게 나 혼자 시신을 기증하고 돌아왔죠.” 병원에서는 장례비로 100만 원을 지급했다. 아들의 영혼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듯했다. 양복 안주머니에 돈을 품은 이 씨는 “아들을 위해서라도 이 돈은 반드시 의미 있게 쓸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동아꿈나무재단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포기해야 하는 아이들이 한 명이라도 줄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들에게 용돈을 준다는 생각으로, 또 다른 아들들에게 공부의 기회를 준다는 마음으로 저소득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 후 11년이 흘렀다. 2004년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둘째 아들이 장가를 갔다. 결혼식장에서도 이 씨 가슴 한구석에는 기쁨 못지않은 허전함이 배어 있었다. 큰놈이 살아있었으면 벌써 장가를 가서 손자 손녀를 안겨줬을 나이였다. 이 씨는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결혼식 축의금으로 들어온 1000만 원을 재단에 한 번 더 기탁하기로 했다. 둘째아들도 선뜻 기부에 동의했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가슴속에 묻은 큰아들에 대한 그리움은 해마다 커졌다. 아버지는 아들이 그리울 때마다 돈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이 씨는 다시 한 번 그렇게 틈틈이 모은 1000만 원을 들고 재단을 찾았다. 당시 기금을 전달받은 동아꿈나무재단 관계자는 “돈을 맡기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가볍다고만 하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셨다”며 “한파 속에서도 직접 돈을 들고 온 이 씨의 모습에 재단 사람들도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얼마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나름 세워둔 기부 목표액이 있다”며 “더 많은 아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나만의 목표를 채워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탁자 288명 - 기금 137억 원으로 늘어▼ 올해 350여명에 장학금 전달키로
지난해 6월 동아꿈나무재단이 주최한 ‘울릉도 독도 자연생태탐방’ 행사에 참가한 외국 학생들이 울릉도에서 환한 얼굴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 동아꿈나무재단
1985년 독지가들의 정성으로 첫발을 내디딘 동아꿈나무재단이 올해로 25주년을 맞았다. 출범 당시 3억 원으로 출발한 재단 장학기금은 올해 130여억 원으로 늘었다. 첫 기금은 1971년 제주 서귀포시에서 감귤농장을 운영하던 실향민 오달곤 씨(1985년 작고)가 보내온 100만 원. 오 씨는 당시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는 2020년부터 가난한 영재들을 위해 써 달라”며 돈을 기탁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1974년 유신정권의 광고탄압 당시 독자들이 격려광고금으로 보내온 1억200만 원을 사회 환원 차원에서 재단 출연금에 포함시켰다. 1985년에도 3억 원을 추가로 출연해 재단을 설립했다. 같은 해 독지가 권희종 씨가 30억 원 상당의 토지재산을 내는 등 총 5회에 걸쳐 증자하면서 현재 재단 출연금은 137억 원 가까이 늘어난 상태다. 이달 현재 기탁자는 총 288명이다.
재단은 지난 한 해 동안 형편이 어려운 중고교생과 대학생 354명에게 총 2억3850만 원을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필요한 책과 참고서를 살 수 있도록 전국 8개 학교 및 교육기관에도 2억513만 원을 지원했다. 벽지 학교 책 보내기 사업, 농아인 야구대회 지원, 신체장애인 지원 등 사회적 약자 및 소외된 계층 지원 사업에 1억 원가량을 썼다. 동아신춘문예 당선자 등에게 학술연구비로 4000만 원을 투자하기도 했다. 재단은 올해 장학금 지급 대상을 350여 명으로 유지하는 대신 장학금 액수는 소폭 늘려 2억8500만 원을 쓸 예정이다. 전체 사회사업비로는 8억5000만 원가량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충남 동아꿈나무재단 국장은 “재단에 여유가 생기는 대로 지원대상을 늘리는 등 앞으로도 소외된 계층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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