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법정 스님(사진)이 1960년대에 쓴 것으로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詩) 9편이 발굴됐다.
출판사 은행나무는 소설가 백금남 씨가 5년간 장편소설 ‘법정-맑고 향기로운 사람’을 쓰면서 법정 스님의 시 9편을 찾았으며, 이 중 4편을 소설에 수록했다고 16일 밝혔다. 은행나무는 “소설에 실린 시 4편은 ‘다래헌 일지’ ‘먼 강물 소리’ ‘병상에서’ ‘어떤 나무의 분노’이며, 나머지 5편은 ‘입석자’ ‘초가을’ ‘내 그림자는’ ‘정물’ ‘미소’”라며 “이 시들은 대한불교조계종 기관지인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에 1963∼1969년 실렸던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출간된 백 씨의 소설은 법정 스님의 출생에서 출가, 수행, 입적에 이르는 생애를 다루고 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어떤 나무의 분노
보라! 내 이 상처투성이의 얼굴을.
그저 늙기도 서럽다는데 내 얼굴엔 어찌하여 빈틈없이 칼자국뿐인가.
내게 죄라면 무더운 여름날 서늘한 그늘을 대지에 내리고 더러는 바람과 더불어 덧없는 세월을 노래한 그 죄밖에 없거늘, 이렇게 벌하라는 말이 인간헌장의 어느 조문에 박혀 있단 말인가.
하잘 것 없는 이름 석 자 아무개! 사람들은 그걸 내세우기에 이다지도 극성이지만 저 건너 팔만도 넘는 그 경판 어느 모서리엔들 그런 자취가 새겨 있는가. 지나간 당신들의 조상은 그처럼 겸손했거늘 그처럼 어질었거늘…….
언젠가 내 그늘을 거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증언하리라 잔인한 무리들을 모진 그 수성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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