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아온 이정국 씨가 21일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25일간의 대표 생활을 마치면서
그동안의 소회를 이야기하고 있다. 평택=박희창 기자
25일 동안 천안함 실종자 가족들의 ‘입’ 역할을 하던 이정국 씨(39)가 21일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 직함을 내놨다. 이날 실종자가족협의회는 ‘천안함 전사자 가족협의회’로 이름을 바꿨다. 대표도 장례위원장인 나현민 일병의 아버지 나재봉 씨(52)가 맡게 됐다.
이정국 씨는 46명 실종 사병들의 가족 200여 명에게서 나오는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고비마다 이들을 설득해 중대한 결단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 브리핑 때는 진솔하고 논리적인 말솜씨를 보여 “뭐 하던 사람이냐”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날 오후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 행정안내소에서 만난 이 씨는 한 달 전만 해도 평범한 컴퓨터학원 강사였다. 하지만 3월 26일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천안함이 침몰하면서 그의 처남 최정환 중사도 실종됐다. 이틀 후 실종자 46명의 가족들은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를 조직했고 그가 대표를 맡았다.
이 씨는 “선동가? 빨갱이? 별 얘기를 다 들었다”며 “처음엔 가족회의에 속기사로 들어갔다가 얼떨결에 발표문을 작성하고 읽은 뒤 대표가 됐다”고 소개했다. “지난달 28일 오전 컴퓨터 강사라니까 가족들의 회의 내용을 컴퓨터로 받아쓰는 일을 맡기더라고요. 중구난방으로 얘기가 오가기에 답답한 마음에 ‘정리해서들 말씀하시라’고 말했던 것이 대표를 맡은 계기가 됐다.”
이 씨는 이후 희생자 가족들의 ‘언론창구’였다. 언론과 해군 앞에서는 ‘가족창구’이기도 했다. 이 씨는 “군과 협의한 것을 놓고 가족들한테 이해시킬 때 가장 많이 힘들었다”며 “우리 가족분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게 용어 선택 등 모든 면에서 신중해야 했다”고 말했다. 3일 구조·수색 중단을 설득하기 위해 나섰던 일이 기억에 가장 크게 남는다고 했다. 이 씨는 “반발도 많았지만 ‘우리 가족 찾으려다 우리 같은 가족을 또 만들 수 없지 않느냐’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렇게 말하고 나온 뒤 쓰러져버렸다는 것.
처남 이야기가 나오자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처남은 의무복무를 마치고 중간에 사회에 나와 관련 자격증 몇 개를 활용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걸 제가 말렸어요. 그게 너무 미안했던 겁니다. 비약하지는 않지만 책임은 느낍니다.”
그는 그동안 눈 한번 제대로 못 붙였다. 나흘 연속 밤을 새우다시피 한 적도 있다. 처남의 시신이 돌아온 날 멍하니 보며 ‘현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복막염에 걸린 큰아이를 병원에 놔두고 몸을 혹사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사람들 덕분이었다.
큰 짐을 내려놓은 이 씨는 “시원섭섭하다”고 했다. 이 씨는 “대표로 나서면서 가족들에게 ‘투명하게, 조용하게, 빠르게’ 하자고 말했다”며 “우리 가족도 해군인데 해군과 싸우고 싶지 않았고 정부도 우리 요구를 많이 들어줬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가족들 모습이 추후 사건 대응에 선례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위험한 곳에서 작전을 수행하다가 숨진 장병들은 진정한 영웅이고 충분한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천안함 희생자와 가족들을 걱정해 주고 기도해 준 국민 모두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꼭 써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이 일 하느라고 강사직에서 잘렸으니까 내일부터 당장 ‘벼룩시장’이라도 뒤져봐야 할 것 같다”며 웃었다. 이 씨는 이름이 바뀐 전사자가족협의회에서 실무를 맡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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