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한 할머니(74)가 나타났다. 그는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한 1만 원짜리 지폐 50장을 꺼내 “천안함 순직 장병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써 달라”며 이렇게 말하고 사라졌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경기 의정부시에서 여관을 운영하던 할머니는 1975년 한 군인이 머물던 방의 이불 밑에서 1000원권 25장을 발견했다. 당시 하루 여관비가 5000원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 군인이 나중에 찾으러 올 거라 생각해 돈을 금고에 넣어뒀지만 군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할머니는 ‘나중에 오면 갚으면 되겠지’하는 생각에 그 돈을 생활비 등으로 다 써버렸다. 그러나 군인의 얼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난 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지고 46명의 장병이 안타깝게 순직하자 할머니는 그 군인을 떠올리고 이제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군인인 천안함 순직 장병들과 유가족들에게 작은 정성을 보태고 싶어 가사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한 달 동안 어렵게 모은 돈은 50만 원. 그는 이 돈을 모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할머니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측에 “천안함 장병이나 유가족들과는 연고가 없지만 똑같은 군인”이라며 “비록 적은 액수지만 35년 전 만났던 군인에게 마음만은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언론에 절대로 이름이 나오지 않게 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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