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한국의 많은 금융회사가 자금 조달을 못하고 심각한 어려움에 빠졌다. 지난해 초 상황이다.
현대캐피탈은 “우리에게 금융위기란 누군가의 견해일 뿐이다”라는 TV광고를 냈다. 일부에서는 “도대체 쟤네들은 뭘 믿고 저러는 거야”라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한 해가 지났다. 이 회사는 광고내용이 근거 없는 허풍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4100억 원대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며 사상 최고의 실적을 냈다. 현대카드는 삼성카드를 제치고 업계 2위로 뛰어올랐다.
정태영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사장(50)은 ‘2020년 한국을 빛낼 100인’ 중에서 은행 카드 보험업계를 통틀어 유일한 인물. 그는 “금융산업에 새바람을 불어넣어 제2금융권 회사도 고객에게 은행 이상의 가치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 점이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캐피탈은 2006년 소득수준을 감안해 대출해주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을 국내 금융권 최초로 도입했다. 또 자산과 부채의 만기를 일치시키는 자산부채관리(ALM) 제도를 적용하는 등 선진금융기법을 앞장서 들여왔다.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글로벌 금융위기의 타격을 거의 받지 않고 오히려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정 사장은 “금융업의 가장 기본은 위기는 항상 올 수 있다고 준비하는 것”이라며 “현대카드가 밖에서는 화려해 보이지만 실은 가장 보수적인 회사”라고 말했다. 과학적인 분석으로 수익과 리스크를 관리하려 노력했고 불확실할 때는 수익보다 리스크 관리를 우선했다는 말. 그는 “리스크 관리가 철저한 회사에 위기는 방만한 경쟁사에 비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10년 후에는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을 단지 금융회사가 아니라 선진화된 과학으로 라이프스타일을 공급하는 독보적인 회사로 가꾸고 싶다”고 했다. 신용카드는 소비자에게 행복을 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 현대카드는 슈퍼콘서트 슈퍼매치 등 스포츠 문화행사, 캠핑카 등 레저서비스, 음악 축구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최우수고객(VIP)을 위한 맞춤형 비서 서비스인 ‘컨시어지’까지 고정관념을 깨뜨리며 신용카드의 영역을 계속 넓혔다.
지난해부터는 고객만족(CS)을 기업경영의 최우선 가치로 놓는 실험을 하고 있다. 말로만 고객을 앞세우지 않고 신상품 개발단계부터 고객만족을 핵심가치로 반영해 모든 기업의 ‘역할 모델’이 되겠다는 포부.
정 사장은 한국 금융의 갈 길은 아직 멀다고 했다. 그는 “자동차 반도체 등의 산업이 세계 정상권에 오르는 동안 한국 금융권은 이상하리만큼 낙후돼 있다”며 “은행이 선두에 서야 하는데 불안한 지배구조 때문에 장기적인 경영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에서는 일정 부분 관치가 필요하다”면서도 “건전성 규제 등 필요한 관치가 아니라 나쁜 관치가 많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능력과 상관없는 ‘낙하산’ 인사를 보내고 정치적 이유나 ‘괘씸죄’ 등을 적용해 인사를 좌우하는 행태가 후진적이라는 설명.
한국사회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적도 빠뜨리지 않았다.
“한국사회는 단기간에 급성장하다 보니 불안한 부분도 많습니다. 광우병 파동이나 천안함 사건에서 보듯이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불신이 팽배한 것은 한국사회의 심각한 취약점이죠. 사회의 신뢰를 회복해야 선진국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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