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길이 84km 구식 서가에 수백만건 서류 보관
英엘리자베스 1세 여왕-히틀러의 편지도 포함
■ 기자-공무원 등에 공개
작가 댄 브라운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만든 ‘천사와 악마’(2009)는 바티칸 교황청이 수세기 동안 세상의 호기심과 질시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한 비밀 서고(書庫)가 핵심 배경이다. 이곳에서 주인공인 천재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 교수는 비밀종교결사 ‘일루미나티’의 바티칸 파괴 음모를 막아낸다. 영화에서 바티칸 비밀서고는 철통같은 방어시스템을 갖춘 미 국방부 건물(펜타곤)이나 007 제임스 본드의 은신처에서나 볼 수 있는 방탄유리와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갖춘 요새로 그려진다.
바티칸 당국은 이런 영화나 소설 덕분에 생긴 비밀서고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과 비밀스러움을 걷어내기 위해 100년 넘게 극소수의 학자들만 들였던 이곳을 조금씩 외부에 드러내기 시작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바티칸이 최근 기자들과 공공기관 관계자들을 엄선해 바티칸의 가장 비밀스러운 성소인 이 비밀서고를 관광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27일 전했다. 전 세계에서 뽑힌 25명의 호기심 가득한 행운아들과 이번 주 이곳을 둘러본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비밀서고의 실제 모습은 영화에서 본 것과는 많이 다르다.
최첨단과는 거리가 먼 구식 설비들이 서고를 지탱하고 있고 1300 묶음의 양피지에 수록된 수백만 건의 서류가 보관돼 있다. 서고의 서로 다른 층들 사이는 삐걱거리는 낡은 승강기로 오갈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서고의 경이로움은 이곳의 규모와 희귀한 문서들에서 비롯된다.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어진 지하 서고의 서가 총길이는 무려 52마일(약 84km). 16세기 목재로 세심하게 제작된 보관함엔 역사 속 왕과 왕자들, 이교도들과 이단자들이 교황청에 보낸 편지들이 담겨 있다. 이 중에는 특히 15세기 철학자 에라스무스와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와 바티칸이 주고받은 편지도 있다. 심지어 독일 총통 히틀러의 편지도 있다.
가장 공들인 편지 중 하나는 1530년 영국 주교들이 당시 교황 클레멘트 7세에게 영국 왕 헨리 8세와 그의 첫 왕비였던 아라곤의 캐서린의 결혼을 무효화하는 데 왜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지를 묻는 편지였다. 이 편지의 서명은 83개였고 이 문제는 당시 영국이 헨리 8세의 이혼을 강행하기 위해 로마 가톨릭과 결별하고 영국 성공회를 창설하는 계기가 됐다.
가장 오래된 편지는 8세기에 씌어진 것도 있었고 1308∼1310년 십자군 기사단에 대한 종교 재판과 관련한 편지들도 있었다.
서고를 둘러본 벨기에 출판사 VdH북스의 폴반덴호벨 씨는 “교황청이 비로소 얼마나 놀라운 자산들을 보유하고 있는지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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