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관료를 두루 거친 한국 경제개발사의 증인이었다. 또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1989∼1993년)을 지내며 ‘사람 중심의 자유시장경제’ 이념을 확산시켰다.
1918년 평남 안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평양공립상업학교와 미국 헤이스팅스대를 졸업한 뒤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이어 박정희 정권 초기인 1962년에 상공부 장관, 1963년에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내며 박정희 정권의 경제발전 전략 초석을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과 의견충돌을 빚어 관직에서 물러나는 등 강직한 성품을 보이기도 했다. 한은 총재 시절에는 5·16군사정변 직후 군사정권이 한은 지위를 약화시키는 한은법 개정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해 사표를 냈고, 기획원 장관 때에는 군정 연장 결의에 반대해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 고인은 롯데제과 회장을 맡으며 전경련과 인연을 맺어 부회장과 고문을 지냈다. 1982년에는 15대 국무총리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어 1989년 호남석유화학 회장에 취임했고, 그해부터 1993년까지 관료 출신으로는 처음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아 기업의 역할과 위상을 크게 높였다.
“모든 경제 문제를 사람으로부터 풀어 나가면 제2의 경제 비약이 가능하다.” 고인이 1981년 4월 전경련 국제경영원 최고경영자과정 강연에서 한 이 말은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사람’에게서 찾는 그의 소신을 잘 보여준다.
그는 당시부터 “정부 관리들은 흔히 기업가를 믿지 않고 나라를 위하는 높은 차원의 생각은 자기만이 가졌기 때문에 민간 활동은 규제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이런 생각이 없어져야 우리 경제가 바로 될 수 있다”면서 자율과 신뢰에 바탕을 둔 경제를 강조했다.
유 전 총리는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과도 인연이 남달랐다. 영어가 유창했던 그는 한국무역협회 회장으로 재직하던 1981년 당시 정 명예회장을 도와 서울 올림픽 유치에 큰 역할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애자 씨와 아들 순정(일본 거주) 순형 순일 순호 순제 씨(이상 미국 거주), 딸 진명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발인은 5일 오전 9시. 02-3010-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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