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은 중국인, 10년은 일본인 취급을 받았는데 이제야 한국인으로 인정받는 것 같아 정말 즐겁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대표팀을 전담 취재하는 국제축구연맹(FIFA) TV 리포터 이달훈 씨(35·사진)는 “요즘처럼 한국인인 게 자랑스러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인 1991년 남아공으로 이민 온 이 씨는 아시아인으로서 어렵게 성장했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책)가 사라지고 흑인이 정권을 잡으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유색 인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은 남아공에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월드컵이 열리는 지금은 완전 딴판이다. 12일 한국이 B조 1차전에서 그리스를 2-0으로 완파하면서 분위기는 싹 바뀌었다. 그동안 남아공 팬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는 박지성은 알아도 박지성이 한국인이라는 것은 몰랐다. 박지성을 일본 사람으로 착각하는 팬이 많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코리아 저팬’을 일본 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지성이 그리스전에서 환상적인 드리블 끝에 쐐기 골을 터뜨리자 ‘박지성’과 ‘코리아’를 함께 연호하고 있다.
“솔직히 축구는 잘 몰랐어요. 이번에 FIFA 쪽 일을 하면서 축구의 영향력이 이렇게 크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국위 선양이 뭐 있겠습니까. 한국이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까지 잡고 16강에 오르면 그게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것 아닌가요.”
이 씨는 TV 리포터로 특별한 경험을 했다. 박지성이 그리스전 후반 7분 쐐기 골을 터뜨릴 때 골문 바로 뒤에서 봤다. 극적인 골 장면에 이은 ‘붉은 악마’의 환호성에 소름이 쫙 끼쳤단다. 그는 “평생 잊지 못할 극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1월 대표팀이 전지훈련을 왔을 때 한국 취재진 가이드를 했던 이 씨는 이번에는 한국 대표팀의 일거수일투족을 영상에 담아 대회 주관방송사인 남아공 SABC와 FIFA 홈페이지에 제공하고 있다. FIFA는 본선에 오른 32개국에 취재진을 한 팀씩 파견해 자세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