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맑은 눈 보면 힘들다는 생각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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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23일 03시 00분


다문화 공부방 4년째 운영
엄마 같은 선생님 이영자 씨

“선생님, 오각형 면적을 구하라는 문제를 모르겠어요.” “선생님, 신문에 천안함 폭침사건이라고 나오는데, 폭침이 무슨 뜻이에요?”

강원 화천군 사내면 주민센터 2층에 마련된 공부방. 이영자 씨(53·여·사진)는 매주 월 수요일 오후면 이곳에서 진땀을 흘린다. 문제집을 풀거나 책을 읽던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하기 힘들 때가 자주 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이곳에서 매주 두 차례 다문화가정 초등생 자녀 10여 명과 어울린다. 공부를 봐주고 아이들 고민거리도 들어준다.

평범한 주부인 이 씨가 자원봉사를 시작한 것은 2007년 4월. 우연히 지인과 함께 다문화가정 주부들을 위한 강좌에 참석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다문화가정 주부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데리고 온 자녀들을 돌본 것. 몇 차례 아이들과 스스럼없이 지내다 보니 정도 들고, 좀 더 체계적으로 이들을 돌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화천군자원봉사센터 협조로 공간을 마련하고 방과 후 공부방을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막막하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무슨 용기로 시작했는지 모르겠어요.”

이 씨는 월 수요일 한나절을 위해 며칠을 투자해야 했다.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짜고, 초등학교 참고서를 붙잡고 공부도 했다. 이 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미용실에 데려가 머리도 잘라 주고 직업군인인 남편 부대의 협조로 군인목욕탕에 데려가 씻어 주기도 했다. 공부를 마친 뒤 시골 구석구석 흩어져 있는 집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것도 이 씨의 몫. 자신의 7인승 승합차로 사내면을 한 바퀴 도는 데 1시간가량 걸린다.

그동안 이 씨와 함께 공부방 자원봉사를 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직장 문제나 개인 사정으로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이 씨 역시 이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의 마음을 붙잡아 준 것은 다문화가정 주부들과 아이들이었다.

“어머니들이 저를 만날 때마다 어눌한 말투로 ‘무척 고맙다’고 말해요. 저에게 아이들을 맡기면 마음이 놓인다고도 해요. 그럴 때면 행복감이 밀려오고 큰 보람을 느낍니다. 아이들의 맑고 깨끗한 눈을 보고 있으면 힘들다는 생각은 싹 사라져요.”

화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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