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사흘 뒤 북한군 남하 저지하려고 폭파다리 두동강나 500∼800명 희생… “위령탑 없어 개탄”
■ 유엔한국참전국협회 6·25 60주년 진혼제
“60년 전 이 자리에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의 혼이 지금껏 이곳을 떠돌았습니다.”
28일 한강대교가 보이는 서울 용산구 노들섬 둔치. 사단법인 유엔한국참전국협회가 마련한 작지만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6·25전쟁 발발 사흘 뒤인 1950년 6월 28일 오전 2시 반경 한강 인도교(지금의 한강대교)에서 폭사한 피란민들의 영혼을 달래 승천시키는 진혼 행사였다.
당시 파죽지세로 내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은 한강 인도교 폭파를 명령했다. 그 시각 다리 위에는 차량과 시민, 군인 등 4000여 명의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뒤늦게 폭파 중지 명령을 하달받은 군이 다리를 지척에 앞뒀을 때 빨갛고 노란 불기둥이 솟아올랐고 사람과 차량이 공중으로 솟구쳤다. 총연장 1005m의 한강 다리가 두 동강 나면서 이날 500∼800명에 이르는 이름 모를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60년이 지나 진혼제에 참석한 10명 남짓한 협회 회원들과 참석자들은 한강을 등지고 놓인 흰 상에 한강다리 흑백 사진과 깨끗한 물 두 잔을 떠놓고 1분간 묵념했다. 폭발 후 모습을 담은 사진 앞에 흰 국화를 바치고 영혼을 의미하는 하얀 풍선 수십 개도 하늘로 날려 보냈다. 바람을 탄 풍선들은 교각 옆에 잠시 머무는가 싶더니 열을 지어 교각의 북단 너머로 사라졌다.
유엔한국참전국협회 지갑종 회장은 이날 행사가 ‘추도제’가 아니라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지내는 ‘진혼제’임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폭파된 한강 인도교는 이듬해 새로 가설됐지만 60년이 흐르도록 당시 폭사한 수백 명의 피란민을 위한 진혼제 한 번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지 회장은 한강대교를 바라보며 “추도제란 매년 하는 것인데 영혼조차 떠나보내지 못한 이들을 어떻게 추도하겠나”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행사에 초청을 받은 박정인 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장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억울한 영령들의 넋을 달래는 위령탑 하나 세우지 않았다는 것은 개탄할 일”이라며 “지갑종 회장을 비롯한 협회 분들이 이런 자리를 개인적으로나마 마련해주신 것에 무척 감사한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은 오래전부터 한강 인도교 희생자들을 위한 위령탑 건립을 주장해왔다. 그는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민족은 망한다”고 강조하며 “선조들의 과업을 기억하고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 고민해야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사진 앞에 바쳤던 국화를 한강에 헌화하며 행사는 끝이 났다. 자리를 준비한 지 회장은 “60년 전 수백 명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이라며 “그동안 일부 시민단체들이 개인적으로 나서서 꾸려온 진혼 행사를 정부당국이 국가 차원의 행사로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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