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집중력과 스피드는 정말 놀라워요. 하지만 그 점이 기초과학 육성에는 오히려 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일본 정부의 첫 한국파견 과학관인 이와부치 히데키(巖S秀木) 일등서기관은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3년 3개월 동안 지켜본 한국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그는 38세의 젊은 서기관이지만 14년 동안 과학기술 국제협력 분야에서만 보낸 전문가. 일본은 그동안 미국 등 선진국의 과학기술 및 정책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과학관을 파견해 왔으나 한국에는 2007년에 처음으로 파견했다. “한국 과학기술의 위상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 나로호 발사 실패 격려 놀라워
이와부치 과학관은 먼저 “한국 과학기술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열의가 부럽다”고 말했다. 특히 나로호 우주로켓 발사 당시 국민들의 열광적 모습이 인상적인 듯했다. “로켓 발사 수 시간 전부터 생방송을 내보내고 국민들도 마치 월드컵 축구를 즐기듯 축제 이벤트로 만들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한국 국민과 언론이 과학계를 오히려 격려하는 모습이 놀라웠다. 일본에서 로켓 발사에 실패했을 때는 예산 낭비와 실패의 책임을 묻는 비난이 거셌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는 한국의 빠른 의사결정과 목표가 정해지면 모든 에너지를 투입하는 집중력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도 이런 장점이 이제는 한국 과학기술 발전에 독(毒)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원천기술 획득은 꾸준한 기초과학 연구로만 가능한데 한국의 단기 성과주의가 기초과학 연구의 싹을 자르고 있다는 것이다.
○ 日 기초과학 투자 응용기술의 4배
“일본은 기초과학연구를 지원하는 문부과학성 예산과 응용기술을 지원하는 경제산업성 예산이 각각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의 65%와 15%이다. 응용기술 예산의 4배 이상을 기초과학에 투자한다. 반면 한국은 두 분야의 예산이 각각 전체 R&D 예산의 30%로 똑같다. 그만큼 응용기술에 높은 비중을 두고 있다.”
일본도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응용기술을 중시했다. 일본 기업이 미국의 원천기술을 이용해 잇따라 제품화하자 당시 미국에서는 ‘일본이 미국의 기초연구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는 비난이 거셌다. 투자는 미국이 하고 돈은 일본이 번다는 불만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고 그 성과가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노테크놀로지, 소재 분야에서 하나씩 나오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지, 왜 부품소재 분야에서 막대한 대일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기초과학보다 응용기술을 우선하는 연구 풍토를 바꾸지 않는 한 해답을 찾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 과기 관료는 적어도 2, 3년 한자리에
그는 또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한국의 과학기술 연구자들을 유행을 좇는 철새처럼 만들었다”고도 했다. “정부로부터 연구비를 타내기 위해서는 최신 유행하는 연구, 당장 산업기술로 연결되는 연구만 찾게 되는데 이 같은 분위기에서는 창의적이고 독자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풍토가 형성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정부 예산이 들어간 프로젝트에 대한 평가는 불가피하지만 너무 잦은 평가는 연구자들이 긴 호흡으로 연구에 몰두할 수 없게 한다”며 “한국에서는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과학기술 행정 관료들의 파워가 일본보다 월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와부치 과학관은 한국 과학기술 관료의 잦은 인사이동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한마디 했다. 그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과학기술행정 분야에서는 담당 관료가 적어도 2, 3년 이상은 있어야 하는데 한국 측 담당자가 3년 동안 5번이나 바뀐 적이 있다”며 “인수인계를 아무리 잘해도 업무 노하우의 수십 퍼센트씩 유실되는 게 과학기술 행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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