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맨쇼의 달인’으로 불린 코미디언 백남봉(본명 박두식) 씨가 29일 오전 8시 40분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1세.
고인은 지난해 4월 늑막염 수술 도중 폐암 세포를 발견해 수술한 뒤 경기 광주시의 재활원에서 요양하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등 건강이 호전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폐렴 진단을 받고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상태가 급속히 악화돼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성대모사와 팔도사투리로 고단한 서민들에 웃음 선사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으로 방송 리포터로도 활동하는 둘째딸 윤희 씨(36)는 이날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된 빈소에서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도 의사와 간호사에게 농담할 정도로 상태가 좋았고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유언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돌아가셨다”며 울먹였다. 윤희 씨는 또 “최근 아버지는 자신이 위독하다는 뉴스를 접하고 국민의 관심을 받는 만큼 건강 회복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며 “폐암 판정을 받고 나서도 ‘많은 암 환자들이 백남봉도 암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나의 웃음을 보며 희망을 갖길 바란다’면서 병마저 즐겁게 받아들이셨다”고 회상했다. 빈소에 놓인 영정은 고인의 인생을 함축하듯 익살맞게 위를 쳐다보며 웃는 모습이었다.
고인의 선배이자 원맨쇼의 쌍벽이었던 코미디언 남보원 씨(74)는 빈소를 찾아 “아름다운 라이벌이었다. 이렇게 남봉이가 먼저 가니 날개를 잃은 것 같은데 나는 이제 누구를 의지하나”면서 “1985년 남북예술공연단으로 평양에 가서 백남봉과 투맨쇼 공연을 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 달 전 만났을 때도 ‘내가 낫거든 투맨쇼를 국민에게 멋있게 보여주자’고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은 1939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평남 진남포로 갔다가 광복을 맞은 뒤 서울로 왔다. 6·25전쟁 때 피란길에서 부친을 여의고 보육원에 맡겨진 뒤 껌팔이, 구두닦이, 공장 직공, 장돌림 등으로 전국을 떠돌았고 이때의 경험은 그가 만들어내는 웃음의 밑바탕이 됐다.
28세 때 물랑루즈 쇼단에서 코미디언으로 데뷔한 이래 여러 쇼 단체에서 활약했고 30세 때 TBC라디오 ‘장기자랑’으로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마늘 양파 고춧가루 등이 마라톤을 벌인다는 내용의 ‘김장 마라톤 중계방송’을 선보이면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기관총 소리, 새 소리, 동물 소리 등의 성대모사와 팔도 사투리에 구성진 이야기를 섞는 레퍼토리로 고단한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암환자들 날보며 희망 갖길”병마저도 즐겁게 받아들여
원맨쇼의 시대가 저문 뒤에도 그는 각종 TV 프로그램에서 구수한 입담을 자랑하는 리포터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국내 코미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연예예술상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05년 ‘백남봉의 청학동 훈장 나리’라는 음반을 냈고 2006년 윤희 씨와 함께 케이블TV 토크쇼를 진행했다.
1990년대 중반 당뇨병 진단을 받은 뒤부터 매일 두세 시간 자전거를 즐겨 타며 건강을 회복해 ‘자전거 예찬론자’가 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제1회 대한민국 희극인의 날’ 행사에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참석하기도 했다.
이날 빈소에는 전재희 보건복지부 장관, 배우 최불암 신신애, 성우 오승룡, 가수 현철 서수남 배일호 현숙, 코미디언 방일수 엄용수 임하룡 최양락 김미화 이경실 최병서 김정식 이윤석 홍록기 씨 등이 조문했고 이명박 대통령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화환을 보내 고인을 애도했다.
장례는 한국방송코미디협회(회장 엄용수) 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부인 이순옥 씨와 아들 준의, 딸 정선 윤희 씨가 있다. 발인은 31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메모리얼파크. 02-3410-6933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