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연방하원의원회관 레이번빌딩 2308호. 방문이 경쾌하게 열리고 190cm나 되는 키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띤 노(老)신사가 반갑게 맞아 선다. 목소리는 좀 허스키했지만 음색이 따뜻하다. 인디애나 주에서 1983년 이후 27년 동안 14선(選)의 연방하원으로 활동해 온 댄 버튼 의원(72)이다.2007년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통과, 2008년 비자면제프로그램(VWP) 가입과 독도 지명 표기 문제 등이 불거졌을 때 한결같이 한국의 편에서 의회 활동에 나선 대표적인 친한파 의원이다. 올해 2월 의회에서 열린 도요타자동차 청문회에서 한인 피해 여성의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던 버튼 의원은 미국 의회 내 지한파들의 모임인 ‘코리아 코커스’의 공동의장이기도 하다.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탈환할 경우 그는 하원 외교위원장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난 반공주의자… 6·25 참상과 한-미 군인 희생 잘 알아 위안부 결의안 촉구, 日공격한게 아니라 옳은 일 한 것 오바마-민주당 외교정책 잘못… 도발엔 단호히 대처해야”
―코리아 코커스의 공동의장인데….
“나는 항상 반공주의자(anti-communist)였다. 6·25전쟁의 참상을 너무도 생생히 잘 기억하고 있다. 또 한국 군인들이 유엔군 미군과 함께 얼마나 용맹하게 싸웠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함께 피를 흘려가면서 지켜낸 소중한 자유와 평화를 지키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또 솔직히 말하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싫다.(웃음)”
―언제 어떤 계기로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됐나.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토크쇼를 진행했던 자니 윤과도 절친한 친구 사이다. 자니 윤과 함께 판문점을 가봤다. 정확히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주한 미국대사의 권유로 방문한 공동경비구역(JSA)에서 한국의 안보 불안을 실감했고 북한이 얼마나 큰 위협인지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도끼 만행의 현장도 봤다.”
―지난해 4월에는 동국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의정활동 중에 한국을 위해 일한 공로를 인정해 준 것 같다. 2008년 미국 지명위원회(BGN)가 독도를 ‘주권미지정지역’으로 지적했을 때 지한파 의원들과 함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독도 표기를 원상회복해 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위안부 결의안도 그렇고 독도 문제나 도요타 청문회에 이르기까지 일본과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가 있나.
“일본을 공격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한 모든 일은 다 그 일들이 옳기 때문에 한 것이다. 도요타라는 대기업과 홀로 맞서 외롭게 진실을 밝히려 애쓴 한국 여성이 처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청문회에서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응당 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한국은 미국에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고마워할 줄 아는 나라다. 이라크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치르는 동안 한국은 가장 앞장서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미관계가 최상이라는 평가가 자주 나오는데….
“동의한다. 의회 내에서도 한국과의 관계가 중요하고 앞으로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초당적 합의가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탈환할 경우 하원을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자동차 문제가 남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경제가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 탓이다.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와의 경쟁으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이 고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역구인 인디애나 역시 경제 침체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
“맞다. 인디애나 역시 자동차 업계의 고전으로 많은 일자리를 잃은 지역이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크라이슬러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많은 지역이다.”
―공개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할 경우 선거를 앞두고 부담이 있는 것 아닌가.
“자유무역이 일자리를 빼앗아 가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자유무역은 궁극적으로 양국에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줄 것이며 나 역시 자유무역 신봉자다.”
―천안함 사태를 맞아 미국 내에서도 북한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한데….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 며칠 전 민주당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이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나 그 측근과 고위급 대화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는데 난 동의하지 않는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직접대화로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면서 핵 폐기를 달성하려 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나. 북한에 대한 유화적 태도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케리 위원장과 나는 의견이 같은 적이 거의 없었다.(웃음)”
―북한 인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도 자주 지적하고 있는데….
“북한에는 도무지 인권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지도자가 자국민들을 굶어 죽게 하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에 따라 희생을 강요하고 박해하는가. 일부 북한 인민군에 있는 사람들은 좋다고 할지 모르겠다. 여하튼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해야 한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승리를 예견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원에서 현재 의석보다 39석을 더 확보하면 다수당이 된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높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경제가 더 엉망이 됐고 실업률도 두 자릿수를 기록할 정도로 높다. 외교정책 역시 강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금껏 해 온 일이 거의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미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버튼 의원은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에게 “나 역시 미국 대통령에 대해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내가 하는 현 정부 비판은 대통령 개인이나 대통령 직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그의 직무수행에 관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경우 하원 외교위원장 하마평이 나오는데….
“나보다는 공화당 외교위 간사인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의원이 더 근접해 있다. 나는 하원 외교위에 있는 소위원회 중 하나를 맡을 가능성이 있다. 아시아태평양 환경소위원회가 있다.”
―동아시아 지역을 상대로 한 공화당 외교정책의 원칙은 무엇인가.
“미국과 대화하고 건설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하는 상대와는 적극적으로 대화할 필요가 있다. 현재 중국과 그런 기조에서 대화를 하고 있으며 북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역안정을 해치고 도발을 자행하는 상대에는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이 우리 당의 원칙이다.”
자연스럽게 버튼 의원은 자신의 방에 있는 기념품과 사진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집무실 책상 오른쪽에 있는 책장에 놓인 황금색 부츠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는 ‘클린턴의 엉덩이 차기 상(Clinton Ass-Kicking Award)’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저 부츠는 뭔가.
“(크게 웃으며) 나도 잊고 있었다. 클린턴 대통령 재임 당시 4년 동안 특위를 만들어 그의 비리 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였고 그 조사를 내가 주도했다. 대통령과 ‘맞짱’을 뜨는데 두려워하지 말고 소신껏 조사하라는 격려의 뜻으로 지지자들이 보내준 것이다. 부츠를 보낸 것은 발로 차버리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 같다.”
―골프가 수준급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인디애나 주 챔피언에 올랐다. 의원이 된 뒤에도 자선대회 등에서 몇 차례 우승했다. 골프는 사람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스포츠 중 하나다. 한국 골프 선수들의 활약을 잘 안다. 최경주 양용은 선수도 있지만 여성 골퍼들의 활약이 대단하다. 한국 여성들이 골프에 가장 적합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집중력이 뛰어나고 다른 외부 조건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평정심을 지키면서 플레이한다는 느낌이 든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버튼 의원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백악관도 재탈환한다면 한미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했다. 물론 현재의 한미관계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말을 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 레이건-링컨 좋아하는 버튼 의원
14선 의원의 관록을 자랑하듯 댄 버튼 의원의 집무실에는 빛바랜 사진들이 많았다. 그가 “근래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평가한 공화당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함께 ‘에어포스 원’ 앞과 대통령 집무실에서 찍은 사진도 보였다. 이 두 사진에는 레이건 전 대통령의 친필사인이 적혀 있었다. 또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나란히 찍은 사진도 있었고 흑인 여성 최초의 국무장관인 콘돌리자 라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다정한 포즈를 취한 사진도 눈에 띄었다.
버튼 의원에게 ‘당신의 마음속에 그리는 진정한 영웅은 누구냐’고 물었다. 버튼 의원은 주저하지 않고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를 꼽았다.
“난 38년생 호랑이띠 옳다면 굽히지 않아”
버튼 의원의 방에는 1777년 독립전쟁 당시 차가운 겨울을 보낼 때 한 군인이 백마에서 내려 펜실베이니아 주의 포지 계곡에서 무릎을 꿇고 승리를 기원하는 그림과 한 배가 거친 풍랑을 헤치고 델라웨어 주 앞바다를 건너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는 “미국이 독립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던 중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가장 위대한 미국의 영웅 조지 워싱턴이 있었고 델라웨어 주를 건너는 작은 돛단배 안에는 당시 14세였던 내 선조가 타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노예 해방을 단행했고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링컨 전 대통령의 초상 및 작은 동상도 몇 개 보였다. 버튼 의원은 “단언컨대 링컨은 19세기 가장 위대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인인 처칠 전 총리의 초상이 여러 곳에 걸려 있다는 점. 버튼 의원은 “처칠 전 총리가 위대한 것은 전쟁의 공포 속에서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의 위협에 굴하지 않았으며 전임 체임벌린 총리가 취했던 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책을 단호히 거부했다는 것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처칠 전 총리가 굴복했다면 미국인의 상당수가 독일어를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했다.
버튼 의원은 “내가 영웅으로 숭배하는 3명의 공통점은 바로 불굴의 용기”라며 “나 역시 옳다고 믿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히 공격적인 편”이라고 자평했다. 버튼 의원은 자신이 1938년생이며 한국으로 치면 호랑이띠라고 소개했다. 댄 버튼 의원
―1938년 인디애나 주 인디애나폴리스 출생 ―신시내티 크리스천대 졸업(1960년) ―인디애나 주 하원의원(1967∼68년, 1977∼80년) ―인디애나 주 상원의원(1969∼70년, 1981∼82년) ―인디애나 주 연방 하원의원(1983년∼·14선) ―연방하원 정부개혁위원장(1997∼99년) ―동국대 명예 정치학박사(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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