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간 그의 노래, 바람의 전설이 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일 03시 00분


이청준 ‘문학자리’ 개원

지난달 31일 전남 장흥에서 열린 ‘이청준 문학자리’ 개원식을 마치고 문학자리 위에 선 참석자들. 장흥=김지영 기자
지난달 31일 전남 장흥에서 열린 ‘이청준 문학자리’ 개원식을 마치고 문학자리 위에 선 참석자들. 장흥=김지영 기자
‘그는 늘 해변 밭 언덕 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노래를 앓고 갔다. 노래가 다했을 때 그와 그의 노래는 바다로 떠나갔다.’(고인의 소설)

높이 2m의 글기둥에 새겨진 ‘해변 아리랑’의 한 대목에 고인의 한살이가 담겼다. 고인이 자주 올랐던 갯나들 마을 산기슭은 득량만 바다가 보이는 곳이다. 늘 밭일을 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밭을 묘지로 조성해 모셨고, 자신도 이곳에 묻혔다.

이청준 2주기를 맞아 지난달 31일 전남 장흥군 진목리 갯나들에 ‘이청준 문학자리’가 개원했다. 지난해 7월 발족한 이청준추모사업회가 조성한 공간이다. 가로세로 각 4m의 돌판 바닥과 돌로 만든 글기둥, 14t 무게의 바위로 구성된 석재구조물이 들어섰다. 부부 조각가인 박정환 신옥주 씨가 만든 작품으로, 글기둥에는 소설 ‘해변 아리랑’ 일부와 고인의 초상소묘, 약력, 평론가 김병익 씨의 비문이 새겨졌다. 돌판 바닥에는 작품의 모태가 된 장흥 곳곳을 고인이 손수 그린 지도를 새겼다.

“형의 문학을 아끼는 많은 분들의 정성이 모여 이루어진 이 ‘문학자리’는 형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태어난 원천을 공간적으로 새로이 형상화함으로써 그 문학의 정신을 상징하는 기념이 될 것입니다.”

이청준추모사업회 회장인 김병익 씨가 인사말에서 ‘문학자리’의 의의를 밝혔다. ‘이청준 문학자리’는 독자와 문인, 동창 등 277명과 별곡문학회를 비롯한 6개 단체가 모금한 2억1000만 원이 바탕이 됐다. 공사비로 1억 원이 소요됐으며 전집 발간에 나머지를 쓴다. 황지우 시인이 추모시 ‘거룩한 염치’를 낭송했다. “비문을 손가락으로 더듬는 까닭은/당신이 우리에게 남긴 그것/거룩한 염치 때문이 아닐는지… 한 수레가 넘는 원고지를 한국문학 능선에 부려놓으셨으니/복 받은 것은 한국어이고/한국 근현대문학은 이청준을 만나 비로소/정신의 실핏줄을 얻었다 하겠습니다”

‘이청준 전집’(문학과지성사) 제1, 2권인 ‘병신과 머저리’와 ‘매잡이’의 봉정식도 함께 진행됐다. 5년에 걸쳐 33종을 발간할 예정이다. 소설가 한승원 씨는 글기둥에 새겨진 ‘해변 아리랑’을 낭독했다. “바다로 간 그의 노래는 반짝이는 물비늘이 되고 먼 돛배의 꿈이 되어 섬들과 바닷새와 바람의 전설로 살아갔다.”

개원식에는 시인 황동규 정현종 김광규 문정희 씨, 철학자 박이문 씨, 소설가 최일남 김승옥 윤흥길 윤후명 씨, 평론가 김치수 김주연 김화영 씨, 영화감독 임권택 이창동 씨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장흥=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 좋아요
    1
  • 슬퍼요
    0
  • 화나요
    1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1
  • 슬퍼요
    0
  • 화나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