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가와 “한국 건보료, 병원 이용정도 따라 차등화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16일 03시 00분


건보제도 문제점 지적-구로가와-前日내각특별고문

“당신은 감기에 걸렸을 때 서울대병원에 갈 수 있습니까?”(구로가와 기요시 교수)

“그럼요.”(기자)

“병원 자주 간다고 건강보험료를 더 내는 것도 아니고요?”(구로가와 교수)

“왜 더 내나요.”(기자)

그는 기자에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되물었다.

1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구로가와 기요시 도쿄대 명예교수. “고령화 사회 때문에 보험 재정은 끝이 보이는데,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인기영합적인 정책에만 치중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1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구로가와 기요시 도쿄대 명예교수. “고령화 사회 때문에 보험 재정은 끝이 보이는데, 선거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인기영합적인 정책에만 치중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진료비가 별 차이 안 나니까 당연히 서울대병원 같은 큰 병원으로 사람들이 몰릴 테고, 내 주머니에서 돈이 추가로 나가지 않으니까 병원이나 약국을 많이 가는 사람이 이익을 보는 구조잖아요.”

14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만난 일본 전 내각(內閣)특별고문 구로가와 기요시 도쿄대 의대 명예교수(74)는 시작부터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신장내과 전문의인 구로가와 교수는 2006∼2008년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총리 밑에서 일본 보건의료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마련한 인물. 이날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30주년 기념 심포지엄 강의를 위해 방한했다.

개인 책임 큰 질병까지, 국가지원 의존은 문제

구로가와 교수는 건강보험을 의료기관 이용 정도에 따라 차등화해서 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과 한국처럼 소득에 따라 일률적으로 부과하면 병원 약국 남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좀 더 적게 받고, 병원을 거의 가지 않는 사람이라면 보험비를 다음 해에 조금 깎아주자는 것이다. 감기나 가벼운 질환까지 모두 보험 적용을 하지 말고, 자비 부담을 높이자고도 했다.

구로가와 교수는 “국가가 나를 위해 뭐든지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고혈압과 당뇨 같은 만성병과 비만은 개인의 책임이 큰데도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병을 고쳐달라고 의사에게 당당히 요구하지만 정작 본인은 담배를 피웁니다. 5분조차 걷는 것을 귀찮아하면서 고지혈증 약을 지어달라고 해요. 밥을 한 숟가락 덜어내지 못하면서 살 빼는 약에만 의지하려 하지요.”

유전병이 아닌 이상 습관을 누르지 못해 생기는 모든 질환을 병원에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건강보험 재정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구로가와 교수의 지적이다.

실제로 이날 구로가와 교수가 점심에 먹은 것은 작은 빵과 수프 한 그릇, 그리고 야채 조금뿐이었다. 뱃살이 하나도 없는데도 구로가와 교수는 “바빠서 평소 운동할 시간을 내기 힘들기 때문에 조금씩, 천천히 밥을 먹으려 애쓴다”고 말했다.

그는 “급격한 고령화, 공공의료보험제도, 쉴 새 없이 늘어나는 의료비 등 일본과 한국의 의료체제는 매우 닮았다”며 “‘의료=공짜’라는 공식을 깨고, 정말 필요한 환자에게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의료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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