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서울 인창고 2학년…여행기차 충돌로 13명 숨져
50대 후반 접어든 동창 60명…옛 은사 모시고 오늘 경주로
인창고 18회 졸업생들이 40년 만에 수학여행을 떠난다. 1970년 수학여행길에 열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선생님과 동기들을 기리기 위해서다. 18회 졸업생 이태호 임봉헌 김규영 씨가 수학여행에 앞서 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사진 왼쪽부터). 오른쪽 사진은 당시 사고를 다룬 본보 1970년 10월 17일자 1면. 사진 제공 인창고 18회 동창회
정확히 1만4611일 만이다. 고교를 졸업한 지 40년 만에 수학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마음은 설렘보다 애틋함이 가득했다. 이미 50대 후반에 접어든 이들이 교복을 꺼내 입고 수학여행을 가게 된 이유는 불의의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선생님과 동기들을 추모하기 위해서다.
1970년 10월 17일 토요일. 당시 서울 인창고 2학년 학생 400여 명은 경북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서울 청량리역에서 기차에 올라탔다. 사고가 난 것은 이날 오전 11시경. 강원 원주역에서 동남쪽 2km 지점에 있는 삼광터널(현 원주터널) 안에서 학생들이 타고 가던 기차가 신호 작동 부주의로 마주오던 화물열차와 정면충돌했다. 이 사고로 당시 인창고 인솔책임자였던 정경근 교감을 비롯한 교사 2명과 학생 11명 등 13명이 목숨을 잃고 학생 20여 명이 다쳤다. 당시 사고는 언론에서 크게 다뤘고 이후 전국 학교들의 수학여행이 안전문제로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인창고 18회 졸업생들은 당시 사고로 세상을 떠난 교사와 동기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10월 17일이면 13명의 유해가 안장된 경기 김포시 감정동 고려공원묘지를 찾아 제사를 지내고 묘소를 관리해왔다. 하지만 올해 10월 17일은 이원선 18회 동기회장의 제안으로 은사와 함께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나 이들을 기리기로 했다. 16일 오전 7시 서울역 앞에서는 환송식이 열린다. 인창고 15회 졸업생인 이귀남 법무부 장관과 최용주 인창고 교장 및 학생들이 40년 만에 수학여행길에 오르는 이들을 배웅한다. 최 교장은 “15회 졸업생 출신으로서 우리 후배들이 너무 자랑스럽다”며 “세월이 지나도 잊지 않고 은사와 동기들을 챙기는 이들이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번 수학여행에는 은사를 비롯해 18회 졸업생 60여 명이 참가한다. 사고 당시 인창고 체육교사였던 현운영 씨(83)는 “잊지 않고 연락해 준 제자들이 고맙다”며 “몸이 안 좋아 같이 못가 아쉽다”고 말했다. 현 씨는 사고 당시 열차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학생들을 업어 나르며 구조에 적극 나섰다. 인창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1997년 정년퇴임한 김대륙 씨(72)는 이번 여행에 동행한다. 김 씨는 “제자들이 40년 전의 한풀이를 하게 됐다”며 “40주년을 기리며 곁을 떠난 선생님과 아이들을 떠올리고 오겠다”고 말했다.
이번 수학여행을 위해 해외에서 잠시 귀국한 동창생도 있을 정도로 18회 동창생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올해 3월부터 수학여행추진위원회를 꾸려 차근차근 행사를 준비해왔다. 이원선 18회 동기회장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열심히 살던 동창생들이 한데 모여 수학여행을 떠나게 돼 감회가 남다르다”며 “끈끈한 동기애와 애교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머리를 크게 다쳤던 18회 졸업생 석응도 씨(57)는 “당시 캄캄한 터널 안에서 머리에 끈적끈적한 피가 흘렀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것도 고마운데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돼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새마을호 기차 한 칸을 빌려 수학여행을 떠나는 이들은 불국사 등 유적지를 둘러보고 추모 행사를 한 뒤 17일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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