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의 인터뷰 룸에 들어온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71)는 자리에 앉자마자 따뜻한 차를 주문했다. 서울의 낮 기온이 영상 5도 안팎으로 떨어진 26일 오후였다. 그는 “춥기는 한데 기분 좋게 춥다”며 웃었다. “레몬 티를 좋아해요. 건강에도 좋고 피로 해소에도 좋고. 적어도 하루 3잔은 마셔요.”(웃음) 단구(短軀)인 노신사의 형형한 눈빛 너머로 묘한 활력이 느껴졌다.
아브레우 박사는 제10회 서울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돼 한국을 찾았다. 시상식은 27일 오후 5시 같은 호텔에서 열린다. 아브레우 박사는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시스테마’(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를 35년째 이끈 공로를 인정받았다. 1939년생인 그는 작곡가를 거쳐 지휘자로 명성을 얻었고 고국의 대학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석유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로 정부의 경제 관련 부서에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눈을 돌린 곳은 베네수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의 교육이었다.
36세였던 1975년 수도 카라카스의 빈민가 차고에서 청소년 11명을 모아 악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관현악 합주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엘시스테마의 첫걸음이었다. 마약과 폭력의 위험에 노출돼 있던 아이들이 클래식 교육을 통해 점차 협동과 이해를 배우게 됐고, 방황을 접고 삶의 목표도 생겼다. 엘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 정부와 세계 각국 음악인, 민간 기업의 후원을 받아 날로 성장했고 현재 베네수엘라에서만 37만 명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한 명의 음악가로서 저는 음악을 통해 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꿈꾸는 것은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청소년 음악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과 유네스코 같은 기관들의 도움을 받아 이 목표도 이뤄나가고 싶습니다.” 35년 전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한 아브레우 박사의 꿈은 아직 현재진행형이었다.
―엘시스테마를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상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받는 서울평화상의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개인적인 영광보다 저와 동료들이 한 활동을 인정해 주는 것이어서 매우 기쁘다. 한국에는 저희 활동에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아서 더 의미가 크다. 한국은 악기를 제공하는 등 그 어느 나라보다 음악 교육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엘시스테마를 시작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
“베네수엘라 음악가 몇 명과 함께 음악 교육에서 혁신적인 시도를 해보자는 데 뜻이 맞았다. 악기 가격이 비싸니 가난한 아이들은 음악을 배울 수 없었고, 음악 교사 수도 모자랐다. 아이들에게 개인 레슨을 하는 것도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수도 카라카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학생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체계적인 음악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관건이었다. 일단 카라카스에서 오케스트라를 하나 창립해 정부로부터 이 비전의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정부 지원을 통해 프로그램을 확대할 수 있었다.”
―엘시스테마의 현재 모습은….
“베네수엘라에서만 37만 명 이상의 청소년과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음악 교사만 6000여 명이다. 오케스트라의 일원이었던 아이들이 세월이 흘러 이제는 교사로 활약하고 있다. 이 젊은 교사들이 큰 힘이 되고 있다. 아이들 가운데 90%는 자라서 음악 교사가 돼 다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소망을 갖는다.”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나.
“정부가 운영비의 95%를 지원하고 나머지 5%는 민간 지원을 받는다. 처음에 정부는 교사들의 월급 정도만 지원했지만 이제는 음악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하고 있다. 또한 각국의 음악가들이 교사로 와서 도와주고 있다.”
―거리의 아이들에게 총과 마약 대신 악기를 줘서 아이들을 변화시켰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연구조사와 통계에 따르면 엘시스테마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까지 참여해 변화를 이끌고 있다. 마약과 폭력을 줄이는 데 더 효과적인 사례는 없다. 이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회 개혁 프로그램이 됐고, 사회적인 물결이 일고 있다. ”
―1975년 2월 첫 수업은 차고에서 연습을 하며 시작했는데 어려웠던 가운데 기억에 남는 일은….
“처음엔 연습장소도, 본부도 없었다. 차고나 공장, 교회 등 누구나 장소를 빌려주면 가서 연습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첫 번째 교육이다. 100명의 청소년이 배울 수 있도록 의자와 책상을 기부 받아 연습할 장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교육 당일 가보니 11명밖에 안 나와 있었다. ‘아, 힘들겠구나’라고 생각을 했다.”(웃음)
―독주나 합창, 다른 장르도 있는데 왜 오케스트라를 선택했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협동과 이해를 바탕으로 함께할 수 있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 덕분에 베를린 필하모닉과 같은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연주회를 할 수도 있었다.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인) 사라 장이 카라카스에 와서 연주를 하기도 했고 다시 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한국도 ‘엘시스테마’와 유사한 음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조언을 해준다면….
“딱 꼬집어 할 말은 없다. 나라마다 특성이 있고 거기에 맞춰야 한다. 다만 한국이 엘시스테마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듯이 우리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겠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1939년생 ―1957 카라카스음대 수학 ―1961 카톨리카 안드레스 벨로대 경제학 박사 취득 ―1975 ‘엘시스테마’ 창립 ―1983 베네수엘라 문화부 장관 ―1993 엘시스테마, IMC 유네스코 국제음악상 수상 ―1998 유네스코 친선대사 ―2009 세계 경제포럼 크리스털 상, TED 상, 스웨덴 폴라음악 상 수상 ―2010 서울평화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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