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한국교육시스템 우수해 선진국도 눈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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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일 03시 00분


27개 교육단체 연합한 세계교육학회, 에바 베이커 초대회장

지난달 말 한국을 찾은 에바 베이커 세계교육학회장은 “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의지는 매우 강하고 학생들의 수준도 높다”며 “다만 한국 학생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
지난달 말 한국을 찾은 에바 베이커 세계교육학회장은 “교육에 대한 한국인의 의지는 매우 강하고 학생들의 수준도 높다”며 “다만 한국 학생들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
“여태까지 교육은 이미 남이 정답을 찾은 걸 가르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새로 마주하게 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평가 방식부터 달라져야 하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롤 모델로 언급할 정도로 한국 교육 시스템은 훌륭하지만 표준화된 시험에 매달리는 건 문제로 보입니다.”

에바 베이커 세계교육학회장(72·사진)은 앞으로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인 베이커 회장은 전 세계 27개 교육 관련 학회를 모아 세계교육학회(WERA·World Education Research Association)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고 선거를 통해 초대 회장으로도 뽑혔다. 이전에는 미국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내면서 미국 교육 개혁에 여러 조언을 하기도 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서 올해 로스앤젤레스 지역 교사 순위를 발표했을 때도 베이커 회장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평가 전문가다.

베이커 회장은 70대 초반의 나이에도 애플 아이팟으로 록 음악을 즐겨 들을 정도로 밝고 활동적인 성격이다. 18세 때 UCLA에 입학해 석사와 박사를 모두 UCLA에서 받은 그는 대학 시절에는 치어리더 대표를 맡기도 했다. 베이커 회장은 “지금도 전 세계를 돌아다니느라 바쁘지만 손자들 야구, 농구, 미식축구 경기에는 되도록 참석하려고 애쓴다. 내 손자들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교육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더욱 절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인재 포럼 2010’ 참석차 한국을 찾은 베이커 회장을 지난달 28일 만나 ‘교육 패러다임 변화’에 대해 물었다.

―세계는 급격하게 변하는데 교육 시스템은 변화 속도를 못 따라가는 것 같다.

“옳은 지적이다. 게다가 우리는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도 모르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가르쳐야 할 가치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할 때가 됐다. 앞으로는 기존 지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를 가르치기보다 새로운 지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이 좀 더 능동적인 삶을 꾸릴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

―오래전부터 창의성이나 비판력을 길러야 한다는 주장이 컸지만 실제 변화는 미미하다.

“그래서 평가 방법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문제를 주고 정답을 찾으라고 요구했다. 이제는 해결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를 제기할 줄 아는 역량이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 요즘 학생들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정보를 찾는다. 정답에 접근하기가 그만큼 쉬워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 중에는 신뢰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 무엇이 진실인가를 검증하고 확인하는 게 중요한 교육 목표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문제 해결에 적합한 데이터나 근거를 설정하는 능력,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역량 등 문제를 얼마나 믿을 만하고 타당한 방식으로 해결했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역량을 갖추려면 지적 수준은 물론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존중감, 타인에 대한 배려 등 학업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 가치를 함께 계발해야 한다.”

―한국 교육도 지덕체(智德體) 사상을 통해 그런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한국 교육은 ‘지’를 평가하는 데 치우쳐 덕과 체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이 많다.

“한국인들이 교육에 대한 열의가 높고 한국 학생들이 각종 국제 학력 평가에서 높은 성취를 이루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한국 학생들은 누구나 기초 학력을 잘 갖춘 걸로 보인다. 미국에서 한국 학생들을 지도해 봐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 학생들은 실수를 두려워하고 모험을 피하는 걸로 보인다. 표준화된 시험을 많이 겪다 보니 시험을 ‘체벌’로 인식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시험은 모르는 것을 배우고 깨우치도록 하려는 데 목적이 있는데 한국은 ‘실수 안 하기’에 집착한다.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학습을 하는 이유다. 일부 교육학자는 한국 학생들이 학업성취도 국가비교(PISA)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이유에 대해 ‘지필 시험이기 때문에 실제 실력보다 점수가 더 잘 나온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반면 미국 교육은 기초 교육은 약해도 개척자 정신을 강조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 학생들은 한국 학생들보다 실수를 덜 두려워한다. 두 나라의 장점을 절충해 보완하면 더 큰 교육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세계교육학회를 출범시킨 이유라고 알고 있다.

“맞다. 아직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계교육학회 스스로 특정 과제를 추진할 수 있을 만큼 제도와 자원을 구비하지 못했다. 하지만 앞으로 회원 국가 간 교육학회 활동을 연대해 교육학 연구가 세계 수준으로 향상되도록 자극하고 서로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한국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교육은 후진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 발전과 교육의 관계에 대한 경험, 한국 교육의 강점은 모든 나라에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모한 데는 교육의 힘이 컸다. 앞으로도 교육의 역동성을 더욱 살려 많은 국가 교육 시스템의 롤 모델이 되기를 바란다. 한국은 더 많이 줄 수 있는 나라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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