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호 원장(왼쪽)과 김한겸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가 미라의 무덤 앞에서 절하고 있다. 대전=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제가 절을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러시지요. 기뻐하실 겁니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병리과 교수(55·고려대 학생처장)와 치과 개업의 정광호 원장(47)은 13일 오후 대전 중구 목달동에 있는 여산 송씨 가문 선산의 무덤 앞에서 절을 했다. 송씨 가문 조상들을 한곳에 모신 가족묘다. 제사상의 주인은 조선 초기에 살았던 ‘호상’이란 인물로 내금위장, 엄호장군을 지냈다고 족보에 기록돼 있다. ‘학봉장군’이란 이름으로 대전 계룡산자연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미라다. 이날 후손들은 미라가 발견된 곳에서 시제(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를 지냈다.
후손도 아닌 김 교수와 정 원장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자신들이 쓴 과학논문 2편을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서다. 김 교수가 미라의 몸을 내시경으로 조사해 ‘사인’을 밝혀내 쓴 의학논문은 2008년 과학학술지인 ‘병리기초응용학회지(BAAT)’에 게재됐다. 정 원장은 미라 치아 마모도를 조사해 사망나이를 밝혀낸 논문으로 올해 8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라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국내에서는 정 원장이 처음이다. 15세기에 사망한 사람의 육신이 현대의학, 과학 발전에 이바지한 데다 박사학위까지 배출한 셈이다.
송홍섭 여산 송씨 종친회장은 “가문의 대표로서 크게 감사한다”며 “두 편의 논문은 종친회에서 영구 보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도 “국내에서는 미라가 발견돼도 과학 연구 기증을 꺼리지만 미라의 과학적 연구는 가문과 고인을 더 영광스럽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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