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 이야기]대법 “용산참사 경찰책임 무죄” 판결 후 만난 김석기 前서울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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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6일 03시 00분


지난달 대법원이 ‘용산 참사의 책임은 농성자들에게 있으며 진압경찰은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용산 참사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에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 전 청장은 “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리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지난달 대법원이 ‘용산 참사의 책임은 농성자들에게 있으며 진압경찰은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 용산 참사 당시 경찰청장 내정자 신분에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김 전 청장은 “경찰의 사기를 떨어뜨리면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지난달 11일과 16일 신문 사회면에는 작은 판결기사가 잇따라 실렸다. 2009년 1월 20일 발생했던 용산 참사와 관련해 대법원이 사건의 책임은 농성자들에게 있으며 진압경찰은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그해 2월 10일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겸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지 20개월 만이다. 경찰청장 사퇴 후 미국에서 지내고 있다던 그가 최근 귀국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할 말이 별로 없다”는 그를 설득해 서울에서 만났다. 법원 판결에 대한 심정부터 물었다.

“법원에 고맙다. 최근에 대한민국에는 이상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도 많았지 않나….”

―법적책임이 없는데 책임을 지고 물러난 셈이 됐다.

“(사퇴는) 전적으로 나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많은 후배가 반대했다. 고민이 많긴 했다. 그런데 당시 정치인들이 내가 물러나지 않으면 국회 문을 닫겠다고 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나라가 어려운 때인데 나 하나 거취문제로 국회가 문을 닫으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대통령을 포함해 누구도 내게 그만두라고 한 적은 없었지만 대통령의 고민을 뻔히 알고 있는 고위 공직자로서 언제까지 연연할 수는 없었다.”

그는 미국에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던 어느 날 “용산 사건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다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남의 집에 들어가 불을 지르고 떼 쓴 사람들 유족에게 평균 7억 원을 주었다는 소식에 기가 막혔다. 시민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애쓰다 목숨을 잃은 경찰 유족에게는 반에 반도 안 되는 1억3000여만 원이 나왔다. 말이 되는가? 돈도 돈이지만 국민을 지켜준 경찰보다 범법자들이 더 대접받는 사회가 대한민국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차분했다. 감정도 절제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입에서 나온 단어들은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났다” 같은 언어들이었다. 절제와 냉정 뒤편에 자리한 내면이 전해졌다.

“용산 사태의 본질이라는 게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죽게 한 게 아니라 범법자들이 남의 건물을 무단 점거해 불이 나게 했고 지나가는 시민을 다치게 했고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거다. 그런 상황에서 무슨 참변이 날 줄 몰랐던 상황이었다. 경찰이 법집행 하는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난 것인데 무조건 경찰이 잘못했다고 하고, 경찰총수를 물러가라니….”

진압과정에서 숨진 고 김남훈 경사 영결식에서 조사를 읽으며 눈물을 쏟기도 했던 그는 “어떻든 불행한 일이었다. 청장직을 물러난 뒤 인연 있는 절에서 시위 사망자 5명을 위해 따로 천도재를 지냈다”고도 했다.

―억울하지는 않았나, 고위직에서 정년을 다 하고 퇴임해도 우울증이 찾아온다는데….

“아침에 눈을 번쩍 뜨고 무의식중에 아, 출근해야지 하고 일어난 날도 있었다(웃음). 많은 분들이 위로해주었다. 폭탄주도 많이 마셨다. 그러다 고통스러운 시간도 인생의 소중한 일부분이므로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자양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미국으로 떠났다. 한 교수님으로부터 보스턴대를 소개받아 적을 두게 됐다.”

‘한국의 법질서 확립에 기여했다’는 평을 들은 그는 미국에서도 각종 강연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미국 경찰 시스템을 둘러보니 배울 게 많던가”라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뜻밖이었다.

“인력의 질이나 사명감 면에서 한국 경찰이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미국 경찰은 출퇴근이 확실한 직장인 개념이 강하다. 불가피한 시간외근무를 하면 어김없이 수당을 받는다. 한국 경찰들은 강력 사건 터지면 몇 날 며칠 집에 안 들어간다. 때론 자기 돈을 써가며 수사한다. 사명감이나 직업정신이 미국 경찰하고는 비교가 안 된다고 할까.”

―미국 경찰의 강력한 법집행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잘 알고 있다. 폴리스라인을 넘으면 가차 없이 대응하는 그들을 보며 왜 한국 경찰은 국민에게 쩔쩔매느냐고 꾸짖는다. 나도 실제 경험해 보니 현장에서 장악력을 발휘하는 미국 경찰이 부럽긴 했다. 격하게 싸우던 사람들도 경찰만 나타나면 싸움을 멈추니 말이다. 하지만 미국 경찰은 우리 기준으로 볼 때 ‘과잉 대응하는 경찰’이다. 폴리스라인을 넘었다고 굳이 시민들을 짓밟을 필요까지 있는가. 미국 경찰이 그럴 수 있는 이유는 경찰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제도적으로 경찰에게 힘을 실어 주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7월 미국 하버드대 흑인학자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교수 일을 꺼냈다.

“교수가 출장 갔다 돌아와서 문 열쇠가 없어 서성이는 것을 이웃이 신고했다. 흑인 교수가 출동한 경찰에게 ‘내 집’이라고 주장하며 신원 밝히기를 거부하자 체포되고 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경찰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했지만 경찰들이 들고 일어났다. 결국 대통령이 해당 경사와 흑인 교수를 불러 화해시켰다.”

국내 언론에도 보도가 되었던 그 일이 경찰을 평생 업으로 삼았던 김 전 청장에겐 남달랐다고 한다.

“순조롭고 매끄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인데 수갑까지 채운 것은 경찰인 나로서도 너무한 처사라고 본다. 유능한 경찰이라면 그 교수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현장에서 판단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미국의 언론 법원 국민들이 대통령 편이 아니라 경찰 편이라는 것에 놀랐다. 우리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인들이 경찰에 대한 존경심이 유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경찰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경찰권이 무력화되면 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과거 공권력이 강하던 시절 경찰이 시민을 억압한 업보 아닌가.

“이제는 지났다고 본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이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고 그런 것을 지켜주는 경찰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 결국 국민의 삶을 지켜주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가질 만한 때가 되었다고 본다.”

그는 재직시절 경찰에게 수사권을 주어야 한다고 앞장섰었다. 1999년 서울 수서경찰서장 시절엔 수사권 독립 홍보문을 경찰서에 붙여 파문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아직도 신념에 변화가 없나.

“물론이다. 전 세계에 경찰에게 수사권 없는 나라는 유일하게 한국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영국은 물론 아프리카 나라들까지 다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다. 미국은 수사권이 오로지 경찰에게만 있다. 검찰은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기소권만 있다. 경찰에 수사권을 달라 하면 ‘직업 이기주의’라고 하는데 오해다. 국민의 치안 서비스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국민에게 어떤 혜택이 있는가.

“일본의 경우를 보면 된다. 일본은 검찰과 경찰이 모두 수사권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경찰의 범죄행위를 검찰이 수사할 수 있고 반대도 가능하다. 검경이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구조다. 검경의 경쟁이란 다름 아닌 ‘공정 수사’ 경쟁이다. 국민은 실체적 진실을 밝혀주는 기관 편을 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극단적으로 검사가 하지 말라는 수사는 경찰이 못한다. 요즘 검찰수사에 대한 국민 불신이 높은데 경찰이 만약 수사권을 갖고 있다면 국민이 의심하는 일에 대해 검찰 못 믿겠으니 경찰이 해라 요구할 수도 있는 거다. 내가 만약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경찰총수라면 ‘대포폰 수사’ 지시했을 것이다. 독점에서 경쟁체제로 가면 소비자 편익이 늘어나듯 수사권도 경쟁체제로 가면 그게 공정사회로 가는 밑바탕이 될 것이다.”

―경찰의 자질문제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많다.

“옛날이야기다. 가장 낮은 계급인 순경이 대부분 대졸자다. 대학 졸업하고도 경찰시험 공부를 위해 4, 5년씩 투자해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온다. 체력도 물론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찰경호학과 경찰행정학과 등 경찰 관련 학과가 전국에 100여 개가 된다.”

―박봉에 격무인데 그렇게 인기가 높은 이유는 뭔가.

“사실 보람 있는 직업이란 게 많지 않다.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직업으로 군과 경찰만큼 매력적인 직업이 있나. 요즘 젊은 순경들 면접하고 대화해 보면 사명감이 뛰어나다. 일에 대한 열정도 많다. 문제는 그들이 경찰이 되고 나서 실망한다는 거다. 너무 권한도 없고 국민들도 우습게 여기고. 교통경찰이 스티커 하나 떼는 데도 시민들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시절 경찰종합학교장으로 밀려나 이른바 물을 먹기도 했었다.

“경북청장, 대구청장 마치고 승진을 기대했었는데 안 됐다. 경찰관 될 때 선친께 총수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출발했다.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다. 그런데 안 시켜 주더라(웃음). 내가 총수를 꿈꿨던 것은 경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살아오신 선친의 영향이 컸다. 내가 좋은 경찰이 되고 총수까지 되어 우리 경찰을 더 좋게 만들면 내 인생도 빛나고 선친의 인생도 성공한 인생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원하던 총수 내정 이틀 뒤 용산 참사가 나는 바람에 23일 만에 꺾였다.

“(잠시 침묵)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자세 한 번 흩뜨리지 않고 형형했던 눈빛도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그는 “빛나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빛나는’ 인생이란 뭔가.

“죽을 때 정말 후회 없이 살았다는 생각으로 눈을 감고 싶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장 건강할 때 한 직업에 모든 에너지를 다 바쳤다. 그런데 그 일이 국민한테 인정을 못 받고 조롱을 받으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인생의 롤 모델을 물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가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답이 왔다. 또 “나의 유전자에는 경주 화랑정신이 새겨져 있다”고도 했다. 문득 기자는 오랜 역사 속 무인과 대화하고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다’는 그가 낯설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치안 서비스를 만든 힘은 바로 저런 한국 경찰의 사명감 때문일 것이다. 그의 얼굴에서 박봉과 격무에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많은 한국 경찰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김석기 前 청장""


―1954년 경북 경주 출생
―경주중, 대륜고, 영남대, 동국대 대학원 석사, 용인대 명예 정치학 박사, 미국 보스턴대 방문연구원
―경찰간부후보생 27기(수석 졸업, 대통령상 수상) 일본경찰대 본과 76기 졸업, 인천연수·서울수서 경찰서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경북·대구지방경찰청장, 경찰종합학교장, 경찰청 차장, 서울지방경찰청장, 경찰청장 내정자
―주일 한국대사관 외사협력관, 주오사카 한국총영사관 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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