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사상가이자 언론학자인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사진)가 5일 지병인 간경화로 별세했다. 향년 81세.
고인은 1929년 평북 삭주에서 태어나 경성공립공업교(현 서울공고)와 한국해양대를 졸업했으며, 1957년 합동통신(현 연합뉴스)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 몽드는 해직과 투옥을 반복하면서도 소신 있는 권력 비판과 사회 비평으로 일관했던 고인을 ‘사상(思想)의 은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1964년 유엔의 남북한 동시 초청을 기사화했다가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며 1972년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1977년 저서 ‘8억 인과의 대화’에서 중국 공산당을 미화했다는 이유로 반공법 위반, 1989년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으로 재직 당시 방북 취재를 기획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각각 구속돼 옥고를 치렀다.
고인은 좌파 진영의 대표적인 사상가로 활동하며 ‘386 세대의 정신적인 지주’로 꼽혔다. 탈냉전과 민족화합을 주장하는 그의 관점은 군부 독재시절 반공주의를 절대가치로 교육받았던 세대들에게 민족애를 강조한 새로운 통일관으로 부각됐다. 대표 저서인 ‘전환시대의 논리’(1974년)와 ‘8억 인과의 대화’를 통해 중국혁명사를 재조명하면서 중국 현대사의 비극의 하나인 문화대혁명을 웅장한 인간 개조로 그리기도 했다.
2000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저술 활동은 자제했지만 사회 참여와 진보적 발언으로 여전히 좌파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급변하는 대내외 변화에도 불구하고 친북 행동과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였다. 자서전 ‘대화’(2005년)에서는 한국 정부의 미국 예속성을 비판하고 북한의 자주성을 높이 평가했으며, 2007년 5월 개성을 방문했을 때 북한 관리가 그의 공적을 치하하자 자신의 남한 내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한 공개 강연에선 이명박 정부를 ‘파시즘 시대의 초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우상과 이성’ ‘베트남 전쟁’ 등 20여 권이 있으며 언론자유상 단재학술상 늦봄통일공로상 후광김대중문화학술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윤영자 씨와 아들 건일(삼성SDS 부장) 건석(녹색병원 외과부장) 씨, 딸 미정 씨(주부)와 사위 오석근 씨(KT파워텔 전무). 빈소는 서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고은 시인,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 부사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아 ‘민주사회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8일 오전 6시이며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다. 02-2227-7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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