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빕니다]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外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0일 03시 00분


은행원 출발 ‘증권 명가’ 키운 금융계 거목

월급쟁이 은행원에서 출발해 맨손으로 종합금융그룹을 일궈내며 55년간 금융 외길을 걸어온 송촌(松村) 양재봉 대신증권 창업주(명예회장·사진)가 9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고인은 1943년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조선은행(한국은행의 전신)에 입사하면서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1955년 전남대 상대를 졸업한 뒤에는 미곡상, 극장업, 양조업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다 1971년 한일은행 청량리지점장으로 입행하면서 금융계로 복귀했다. 이때 정부가 사채시장을 양성화할 것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1973년 단자회사인 대한투자금융을 세웠다. 당시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해태제과 박병규 사장이 주요 주주로 동참했다. 이어 일본 출장길에 번성하는 증권업을 본 뒤 ‘이제는 증권시대’라는 판단 아래 1975년 중보증권을 인수해 대신증권으로 사명을 바꿨다.

그러나 1977년 대신증권 영업부장이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취임 4개월 만에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 이후 대신증권은 자본금을 모두 까먹어 자본잠식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1981년 대신증권 사장에 복귀한 그는 잘나가던 대한투자금융 주식을 미원 임 회장이 가진 대신증권 주식과 바꿔 대신증권의 최대주주가 됐다.

이후 고인은 타고난 성실함과 위기관리 능력으로 대신증권을 ‘증권 명가’로 키웠다. 컴퓨터 개념조차 낯설던 1976년 증권업무 전산화 체계를 도입했다. 1997년 국내 증권사 최초로 도입한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은 대신증권을 증권업계의 ‘빅5’로 끌어올리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외환위기 직전인 1995년에는 대신증권의 단기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외환위기의 칼바람을 피했다.

고인은 2001년 회장 직을 지금은 고인이 된 차남 양회문 전 회장에게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은퇴했다. 그 후 1990년 사재를 출연해 세운 송촌문화재단을 통해 사회공헌활동에 주력했다. 현재 대신증권은 고인의 며느리이자 고 양회문 전 회장의 부인인 이어룡 대신증권 회장과 둘째 사위인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족으로는 아들인 양회천 전 광주방송 회장, 양용호 대신에셋 회장, 양정현 대신정보통신 부사장과 사위인 나영호 전 대신경제연구소 사장, 이시영 중앙대 교수, 이재원 대신정보통신 사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결미사 명동성당 11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용인시 천주교 공원묘지다. 02-3010-2230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 부인 신덕진 여사▼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어머니인 신덕진 여사(사진)가 9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고인은 1923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대구 신명여고를 졸업했으며, 1944년 이 명예회장과 결혼해 1남 5녀를 두었다. 신 여사는 일제강점기에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신(新)여성’이었으나 이 명예회장과 결혼한 뒤 코오롱 집안의 조용한 내조자로 평생을 지냈다. 이 명예회장이 코오롱그룹을 키우고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지내는 등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신 여사의 소리 없는 내조가 큰 힘이 됐다는 평가다. 이 명예회장과 신 여사는 재계에서 금실 좋은 부부로 알려져 있으며, 2004년 1월에는 결혼 60주년을 맞아 회혼례를 올리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6시, 장지는 경북 김천시 봉산면 금릉공원묘원. 02-3677-3009∼11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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