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꾹꾹 눌러쓴 ‘나도 사람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6일 03시 00분


문해학교서 글 깨친 서정식 씨
교과부 백일장서 최우수상

15일 서울 광진구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2010년 평생학습대상·문해교육백일장대회 시상식에서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과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교육과학기술부
15일 서울 광진구 악스코리아에서 열린 2010년 평생학습대상·문해교육백일장대회 시상식에서 설동근 교육과학기술부 차관(오른쪽에서 다섯 번째)과 수상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교육과학기술부
15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한 2010년 문해교육 백일장대회 시상식에서는 51명의 ‘늦깎이’ 학생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와 수기, 편지 분야에서 총 4900여 명이 응모해 51명이 상을 받았다.

수상자는 모두 성년 문맹자를 대상으로 한 문해학교 학생으로 글을 몰라 겪어야 했던 아픔을 진솔하게 표현했다. ‘나는 사람이다’라는 글로 수기 분야 최우수상을 받은 서정식 씨(44)는 여덟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친구들이 학교에서 글을 배울 때 밭에서 일을 했다. 어머니가 재혼하며 동생들을 데리고 떠나자 서 씨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남의 집 농사일을 거들며 외톨이로 살았다. 고생 끝에 아내를 만나 아이까지 낳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됐다. 간판을 읽는 것부터 은행 업무를 보는 것까지 사소한 일상 하나하나가 발목을 잡았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이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를 때였다. 차마 글을 못 읽는다고 말할 수 없어 애꿎은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집 밖에서 담배만 피웠다. 마을 회의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에서는 나를 괴팍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저절로 사람들과 멀어졌다”고 말했다.

3년 전 서 씨는 그동안 눈치는 챘지만 내색하지 않던 아내에게 처음으로 문맹이라는 사실을 털어놨다. 다음 날 아내의 손에 이끌려 문해학교를 찾았다. 그는 이제 글을 읽는 것은 물론이고 작문 실력도 수준급에 이르렀다. 서 씨는 “글을 배우고 나서야 진짜 사람이 됐다”며 “내년에는 이장이 돼 마을 어르신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시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탄 주부 오점순 씨(55)도 평생 글자를 모르는 것이 한이었다. 오 씨는 2007년에야 한글을 배웠다. 갓난아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학교 문턱조차 가보지 못했다. 특히 말 못 하는 세 아들을 돌보며 뒤늦게 ‘학생’이 된 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받아쓰기 연습을 했다. 시 쓰는 소질이 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그는 특수학교에 다니는 세 아들과 글을 깨친 자신의 이야기를 ‘기적’이라는 시에 담아 상을 받았다.

6년 전 열여섯 살 연상의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베트남 신부 호티안뜨익 씨(25)는 이번 백일장에서 ‘나에게 쓴 편지’로 편지 분야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네 자녀를 둔 그는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 때문에 무기력감에 빠졌지만 한글을 배우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이날 함께 치러진 대한민국 평생학습대상 시상식에서는 20여 년간 야학 교사로 수원제일평생학교를 운영하며 성인에게 한글을 가르쳐 온 박영도 씨(51)가 개인 부문 대상을, 65세 이상 노인 자원봉사자들이 지역 노인에게 정보기술(IT) 교육을 무료로 해주는 경기 안산시의 평생교육시설 ‘은빛둥지’가 단체 부문 대상을 받았다.

윤석만 기자 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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