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새벽 서울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1번 출구 앞에서 권순목 씨(왼쪽)와 나승권 씨가 맛있게 구운 군고구마를 취재진에게 먹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이들은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팔아서 번 돈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서울 동작구 지하철 신대방역 1번 출구 앞에는 세상 어떤 군고구마보다 따뜻하고 달콤한 군고구마가 있다. “맛있는 군고구마 있어요!” 22일 오전 1시, 우렁찬 목소리가 추위에 잔뜩 움츠린 채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군고구마의 수익금은 재료값만 빼고 100원도 빠짐없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출판사 가이드포스트 영업부에서 일하는 나승권 씨(23)는 군고구마 장사 4년째. 거리를 걷다 땔감용으로 쓸 만한 버려진 목재만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간다.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 동안 나 씨는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군고구마 장수로 ‘투잡’을 뛴다. 퇴근하고 돌아와 라면으로 대충 저녁을 때운 뒤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군고구마를 판다. 실업팀 축구선수로 뛰다 퍼스널 트레이너로 전업하려고 준비 중이던 동갑내기 친구 권순목 씨는 ‘천사’의 꼬임에 넘어가 올해부터 장사를 함께 하고 있다. “매출 절반을 줄 테니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자기는 번 돈을 다 기부할 거래요. 저도 질 수 없어 같이 기부하기로 했죠.” 평생 감기 한번 걸려본 적 없는 강철 체력의 권 씨이지만 밤마다 군고구마를 파느라 겨울 내내 감기를 달고 산다. 하루 5만∼10만 원어치를 팔면 석 달 동안 300만 원 정도의 수익금이 생긴다고 한다.
“군고구마는 날씨가 추울수록 잘 팔려요. 불우한 어린이들은 추울수록 힘들잖아요. 군고구마 한 봉지를 팔 때마다 그 아이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면 추위나 피로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추위도 괴롭지만 스물셋, 연애도 일도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다. 2주 전 나 씨는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서 “영화 같이 보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눈물을 머금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18일 두 청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주관하는 ‘1일 산타’ 봉사활동에 지원해 장애아동 시설인 경기 광주시 초월읍 ‘한사랑마을’을 찾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까’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지난주 토요일 만난 장애어린이들의 활짝 웃는 얼굴이 떠올라요. 그 아이들에게는 이 군고구마가 따뜻하고 달콤한 ‘웃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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