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고구마 팔아 기부” 열혈 ‘투잡’ 청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3일 03시 00분


스물세살 나승권-권순목씨 낮에는 직장 밤에는 거리로 수익금은 몽땅 어린이재단에

22일 새벽 서울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1번 출구 앞에서 권순목 씨(왼쪽)와 나승권 씨가 맛있게 구운 군고구마를 취재진에게 먹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이들은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팔아서 번 돈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22일 새벽 서울지하철 2호선 신대방역 1번 출구 앞에서 권순목 씨(왼쪽)와 나승권 씨가 맛있게 구운 군고구마를 취재진에게 먹어보라고 권하고 있다. 이들은 추운 겨울 길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팔아서 번 돈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서울 동작구 지하철 신대방역 1번 출구 앞에는 세상 어떤 군고구마보다 따뜻하고 달콤한 군고구마가 있다. “맛있는 군고구마 있어요!” 22일 오전 1시, 우렁찬 목소리가 추위에 잔뜩 움츠린 채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군고구마의 수익금은 재료값만 빼고 100원도 빠짐없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통해 불우한 어린이들에게 전달된다.

출판사 가이드포스트 영업부에서 일하는 나승권 씨(23)는 군고구마 장사 4년째. 거리를 걷다 땔감용으로 쓸 만한 버려진 목재만 보면 자기도 모르게 손이 간다.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 동안 나 씨는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군고구마 장수로 ‘투잡’을 뛴다. 퇴근하고 돌아와 라면으로 대충 저녁을 때운 뒤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군고구마를 판다. 실업팀 축구선수로 뛰다 퍼스널 트레이너로 전업하려고 준비 중이던 동갑내기 친구 권순목 씨는 ‘천사’의 꼬임에 넘어가 올해부터 장사를 함께 하고 있다. “매출 절반을 줄 테니 같이 하자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자기는 번 돈을 다 기부할 거래요. 저도 질 수 없어 같이 기부하기로 했죠.” 평생 감기 한번 걸려본 적 없는 강철 체력의 권 씨이지만 밤마다 군고구마를 파느라 겨울 내내 감기를 달고 산다. 하루 5만∼10만 원어치를 팔면 석 달 동안 300만 원 정도의 수익금이 생긴다고 한다.

“군고구마는 날씨가 추울수록 잘 팔려요. 불우한 어린이들은 추울수록 힘들잖아요. 군고구마 한 봉지를 팔 때마다 그 아이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하면 추위나 피로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추위도 괴롭지만 스물셋, 연애도 일도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다. 2주 전 나 씨는 좋아하는 여자 친구에게서 “영화 같이 보자”는 연락을 받았지만 눈물을 머금고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18일 두 청년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주관하는 ‘1일 산타’ 봉사활동에 지원해 장애아동 시설인 경기 광주시 초월읍 ‘한사랑마을’을 찾았다. “‘오늘은 나가지 말까’ 할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지난주 토요일 만난 장애어린이들의 활짝 웃는 얼굴이 떠올라요. 그 아이들에게는 이 군고구마가 따뜻하고 달콤한 ‘웃음’이에요.”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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