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하며 北고아 돕는 한인에 美사회 감동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31일 03시 00분


입양고아 출신 한상만씨 화제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된 뒤 전 재산을 털어 굶주리는 북한 어린이를 돕고 있는 한 미국 거주 한국인의 사연이 29일 AP통신에 소개돼 감동을 주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인근 패서디나에 사는 한상만 씨(65)의 이야기다. 2002년 병원을 찾았던 그는 골수암으로 3∼5년 더 살 수 있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 한 씨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삶의 목표와 살아야 할 이유를 일깨워주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집까지 팔아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을 설립한 뒤 본격적으로 북한 고아를 돕는 일에 나섰다. 지난해 그는 북한 사리원과 평성 보육원 어린이들에게 포장음식 14만여 개와 겨울옷 1000점을 보냈다. 동시에 한 씨는 탄자니아 캄보디아 등에 보육원을 짓는 일도 지원하고 있다.

한 씨가 고아를 위해 여생을 바치기로 결심한 배경에는 그 자신이 반세기 전 미국에 입양됐던 전쟁고아 출신이라는 사연이 숨어있다. 12세 때인 1954년 의사가 되려는 포부를 안고 상경한 한 씨는 서울대병원을 찾았다가 재건을 돕기 위해 한국에 와 있던 미국인 아서 슈나이더 교수를 만나게 됐다. 2시간 넘게 고아의 사연을 들은 슈나이더 교수는 이후 그를 돌봤고 1961년 귀국할 때 미국에 데리고 갔다.

당시 미혼이던 슈나이더 교수는 미혼자가 입양을 할 수 없게 규정됐던 당시의 미국 법을 고치기 위해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법개정을 촉구했다.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한 씨의 입양을 청원하는 특별법에 서명했다. 미국에서 한 씨는 대학을 마친 뒤 화학회사 듀폰에 취업했고 몇 년 후 화학제품 무역회사를 창업해 사업적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뜻밖의 암 판정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그때부터 그는 양아버지였던 슈나이더 교수가 반세기 전에 자신을 위해 그랬듯이 미국 의회를 찾아다니며 중국을 떠도는 탈북 고아의 미국 입양을 촉진하는 법안 통과를 위해 열심히 로비활동을 펴고 있다. 현재 그는 딸의 집 3층에 사무실을 꾸리고 보육원 건설과 로비를 위해 밤낮 전화통을 붙잡고 산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한 씨의 컴퓨터에는 중국을 헤매는 12세 북한 고아의 사진이 붙어있다. 12세 때의 자신을 떠올리는 사진이다.

탈북 고아 입양 법안은 올 초 미 상하원에 제출됐으나 이번 회기에 통과되지 못하면 자동 폐기된다. 한 씨는 “제삼국을 떠도는 북한 고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죽기 전에 법안이 통과되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사들이 선고했던 것보다는 오래 살고 있지만 사실 항암치료에는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한 씨는 “하느님이 내게 일을 하게 하려고 지금까지 살게 해주었다”며 “내가 하는 일이 나에게는 치료약”이라고 덧붙였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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