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사찰림을 조사한 뒤로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사찰생태에 관한 조사가 없었습니다. 사찰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선 비춰 볼 거울로 사찰생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2002년부터 7년에 걸쳐 전국 108개 사찰을 돌아봤다. 토양 나무 꽃 곤충 동물 등 사찰생태를 관찰해 그 내용을 책 10권에 오롯이 담았다.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 대표(64·사진)가 최근 완간한 ‘산사의 숲’ 시리즈다.
17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완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김 대표는 삭발한 모습이었다. 8년째 폐암으로 투병하고 있는 그는 “이제 듣는 항암제가 없어 지난해 12월부터 치료를 중단했다. 그때 병원에서 3개월 남았다고 했다. 10분 이상 걸으면 숨이 찬다”면서도 “숲이 치유 기능이 있기 때문인지 그래도 1년 정도는 더 산 것 같다”고 말했다.
고교 국어교사 출신으로 출가했다 환속한 경험도 있는 김 대표는 1994년 환경단체 두레생태기행을 설립하고 생태운동과 숲 해설 등을 해 왔다. 그는 “운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모든 절에 다녔고, 사찰에서 주변 생태를 파괴한 사례도 가감 없이 담기 위해 절에서 잠을 자거나 밥을 얻어먹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책에는 비구니 사찰인 경북 청도 운문사, 부처님 오신 날에만 개방하는 경북 문경 봉암사 등 평소 접근하기 어려운 사찰도 포함돼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는 1500년이 넘은 고찰로 아름답다고 평가받지만 생태적으로는 많이 부족해요. 주변이 솔숲에서 사과밭으로 바뀌었는데 농약을 치다 보니 근처에 곤충이 하나도 없습니다.”
김 대표는 “사찰은 그 문화유산뿐 아니라 생태도 아름다워야 한다”며 “외부에서 사찰생태를 파괴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찰 측이 건물을 짓거나 조경을 새로 하며 주변 생태를 파괴하는 일도 많다”고 했다. 생태가 잘 보존돼 있는 사찰로는 경북 포항 보경사, 전남 해남 미황사, 경북 봉화 청량사 등을 꼽았다. 그는 “시간이 허락한다면 사찰 주변의 식생을 보존할 수 있는 불교수목원을 세우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기도 했다.
“석가모니는 숲으로 출가하고 숲에서 열반에 든 숲의 성자입니다. 불교는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을 가진 숲의 종교죠. 사찰생태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