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앞에선 대화 뒤로는 도발…절대 속아선 안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1일 19시 37분


김신조 목사, ‘리멤버 1·21’ 행사 참석

21일 경기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민간인통제구역 내 ‘1·21 침투로 안보견학장’을 찾은 전 북한간첩 김신조 씨(70·목사)가 육군 25사단 장병들에게 43년 전인 1968년 1월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남한에 침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1일 경기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민간인통제구역 내 ‘1·21 침투로 안보견학장’을 찾은 전 북한간첩 김신조 씨(70·목사)가 육군 25사단 장병들에게 43년 전인 1968년 1월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해 남한에 침투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연천=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그날도 이렇게 춥고 눈이 쌓여있었습니다." 21일 오후 경기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민간인통제구역 안 '1·21 침투로 안보견학장'을 찾은 김신조 씨(70·목사)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43년 전 "박정희의 목을 따기 위해"라는 말을 하며 북에서 걸어 내려왔던 바로 그 길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날 '1·21 청와대 습격사건'을 되새기기 위해 열린 '리멤버(Remember) 1·21' 행사에 육군 제25보병사단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그는 신동만 사단장 등 부대원 100여명과 함께 당시 철책이 그대로 보존된 안보견학장을 찾았다. 군사분계선에서 2.5㎞ 떨어진 곳이다. 김 씨는 감회가 깊은 듯 녹슨 쇠기둥과 철조망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그는 "내가 (1·21 사건의) 증인이라면 나에 대한 증인은 바로 이 철책"이라며 "구멍 뚫린 철책이야말로 역사의 증인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그 때 작전이 성공했다면 여기 있는 여러분들도 모두 지금의 북한체제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며 "파주에서 나무꾼 형제를 만나 작전은 실패했지만 나는 자유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 장소인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군 교통호를 찾은 그는 '침투지점'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눈 덮인 임진강을 가리켰다. 김 씨는 "바로 저 강 너머 갈대밭에서 하룻밤을 잤다"며 "워낙 힘든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영하 20도의 날씨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혹독한 훈련과정과 완벽에 가까운 침투과정을 설명하며 그는 북한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주문했다. 김 씨는 "북한은 앞으로는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뒤에서는 도발을 일삼는 집단"이라며 "그들의 전술에 절대 속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장병들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김 씨의 증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지난해 9월에 입대한 김동준 이병(23)은 "책이나 영화에서만 봤던 이야기를 현장에서 확인하니까 (당시 사건이) 실감나게 다가온다"며 "앞으로 적 침투 경계근무에 한치의 소홀함도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체험은 파주시 파평면 파평산 자락에서 끝났다. 당시 김 씨 일행이 민간인의 눈을 피해 산길을 따라 서울로 잠입했던 시작 지점이다. 그는 "그동안 군 관계자들과 비공식적으로 침투로를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젊은 장병들과 함께 온 것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매년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체험을 준비한 신 사단장은 "적은 한겨울과 같은 악조건을 이용해 침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며 "어떤 기습도발도 즉각 응징해 승리할 수 있는 완벽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8년 발생한 1·21 사건은 김 씨 등 무장공비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의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으로 29명이 사살되고, 1명은 북으로 도주했다. 김 씨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우리 군인 및 민간인 7명도 희생됐다.

양주=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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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3

추천 많은 댓글

  • 2011-01-21 20:56:47

    그때 나는 재대를 7개월 앞두고 있다가 당신덕택에 6개월을 더 했소. 맞어, 그해 68년는 내가 살아온중에 눈이 제일많이 온해였지. 121사태가 지나고 그해 11월초순에 울진, 삼척에 120명의 무장공비가 양민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럿지. 그해 년말까지 소탕작전이 벌어졌는데 나는 지원해서 후방 지원업무에 종사했었지. 그때 사살된 공비시체는 와이어줄로묶어 헬기에 달고 내려와서 우리부대옆에 뒀는데 총을 4-50발 맞은자들도 있었다. 국군 공수부대원 전사자는 태극기로 덮어 헬기에 싣고 내려오든 장면이 눈에 선하다. 113명사살,7명 생포, 아군도 전사상 200여명 피해를 냈다. 신조씨! 나는 당신이 밉지가 않소, 우리 아이들의 반공의식을 일깨워주는 당신이 고맙소, 모두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오.

  • 2011-01-21 20:53:54

    그렇습니다.북한은 지금 궁지에 몰린 상황을 타개하려고 대화를 들고 나옵니다. 그들은 늘 속임수로 양동작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령사회주의의 본질입니다.왜 남한은 지난 2세대를 북의 속인수에 놀아나고 있는지 참 안타깝습니다.그렇게 당하고도 정산 못차리는 우리 정부,국민이 원망 스럽기도합니다. 이전 그만 속으십시요.이로 인해 북의 2400백만 동포가 김씨의 지상지옥에 같혀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번에 소말리아 해적을 무력으로 소탕한 것 같이 전쟁을 불사하는 단호한 결의로 대북 협상을 해야합니다. 북핵과 개방은 김씨왕조에서는 기대하면 않됩니다. 기대하면 다시 속게됩니다.

  • 2011-01-21 19:43:32

    한국이 천안함과 연평도를 북한의 소행으로 그동안의 생활이 북한의 대화와 협력의 손길을 내밀면서 뒤에서는 다른 침략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도 막강한 군사력을 키우고 무기도 최첨단으로 해야 하듯 싶네요 북한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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