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경기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민간인통제구역 안 ‘1·21 침투로 안보견학장’을 찾은 김신조 씨(70·목사)의 목소리는 상기돼 있었다. 43년 전 “박정희의 목을 따기 위해”라는 말을 하며 북에서 걸어 내려왔던 바로 그 길이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날 ‘1·21 청와대 습격사건’을 되새기기 위해 열린 ‘리멤버(Remember) 1·21’ 행사에 육군 제25보병사단의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그는 신동만 사단장 등 부대원 100여 명과 함께 당시 철책이 그대로 보존된 안보견학장을 찾았다. 군사분계선에서 2.5km 떨어진 곳이다. 김 씨는 감회가 깊은 듯 녹슨 쇠기둥과 철조망을 말없이 쓰다듬었다. 그는 “구멍 뚫린 이 철책이야말로 역사의 증인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그때 작전이 성공했다면 여기 있는 여러분도 모두 지금의 북한체제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며 “파주에서 나무꾼 형제를 만나 작전은 실패했지만 나는 자유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음 장소인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군 교통호를 찾은 그는 ‘침투지점’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 앞에서 눈 덮인 임진강을 가리켰다. 김 씨는 “그날도 이렇게 춥고 눈이 쌓여 있었는데 바로 저 강 너머 갈대밭에서 하룻밤을 잤다”며 “워낙 힘든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영하 20도의 날씨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혹독한 훈련과정과 완벽에 가까운 침투과정을 설명하며 그는 북한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주문했다. 김 씨는 “북한은 앞으로는 대화를 하자고 하면서 뒤에서는 도발을 일삼는 집단”이라며 “그들의 전술에 절대 속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장병들은 엊그제 일처럼 생생한 김 씨의 증언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지난해 9월에 입대한 김동준 이병(23)은 “책이나 영화에서만 봤던 이야기를 현장에서 확인하니까 (당시 사건이) 실감나게 다가온다”며 “앞으로 적 침투 경계근무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체험은 파주시 파평면 파평산 자락에서 끝났다. 당시 김 씨 일행이 민간인의 눈을 피해 산길을 따라 서울로 잠입했던 시작 지점이다. 그는 “그동안 군 관계자들과 비공식적으로 침투로를 온 적은 있지만 이렇게 젊은 장병들과 함께 온 것은 처음”이라며 “앞으로 매년 참석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 체험을 준비한 신 사단장은 “적은 한겨울과 같은 악조건을 이용해 침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어떤 기습도발도 즉각 응징해 승리할 수 있는 완벽한 군사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8년 발생한 1·21사건은 김 씨 등 무장공비 31명이 휴전선을 넘어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세검정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으로 29명이 사살되고 1명은 북으로 도주했다. 김 씨만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우리 군인 및 민간인 7명도 희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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