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년 전 ‘조봉암 사형’ 직후 단독 취재한 홍길 前동아일보 기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9일 03시 00분


“죽산 최후, 역사가 평가하게 서슬퍼런 현장 낱낱이 알려”

죽산 조봉암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도한 동아일보 1959년 8월1일자 3면 기사(왼쪽). 종보도했던 전 동아일보 기자 홍길 씨.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죽산 조봉암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보도한 동아일보 1959년 8월1일자 3면 기사(왼쪽). 종보도했던 전 동아일보 기자 홍길 씨.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한시가 급했다. 서둘러 서울 서대문형무소로 달려갔다. “죽산 선생 사형이 집행됐다니요?” 형무소 직원들은 당시 동아일보 법조팀 홍길 기자(78·당시 26세)를 알아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홍 기자는 무턱대고 형무소장을 찾아갔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소장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답을 피했다. 다른 간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죽산 조봉암 선생(1898∼1959)의 사형 집행에 대해 함구로 일관했다.

○ 서대문형무소 단독 취재

그래도 취재를 멈출 수 없었다. 형무소 안에 들어온 기자는 자신이 유일했다. 사형 집행 현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간접 취재를 해서라도 조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역사에 남겨야 했다. 일단 ‘사형이 집행됐다’는 기사를 전화로 송고한 뒤 형무소 곳곳을 누비며 취재에 나섰다. “죽산 선생의 마지막 모습은 어땠습니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은 무엇이죠?”

1959년 7월 31일 홍 씨는 자신의 기자생활 중 가장 바쁜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인 8월 1일 조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스케치한 기사를 단독으로 지면에 실었다. 제목은 ‘조용히 교수대의 이슬로’였다.

조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서대문형무소 관계자를 통해 유일하게 취재한 전 동아일보 기자 홍길 씨는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서 기자와 만나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피 끓는 청년 기자에서 이제는 귀도 잘 들리지 않는 노인이 된 홍 씨는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어야 했는데…”라며 아쉬워했다.

당시 법조기자단에서도 사형 집행을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전날에야 재심청구가 기각돼 사형이 확정된 상황이었기 때문. “참담한 심정이었죠. 하루 만에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뭐라 할 수 있겠어요….” 항의라도 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 대신 홍 씨는 독자에게 현장을 전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조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당시 내가 해야 할 일이었죠.” 홍 씨에게 낙종한 법조기자단은 그를 기자단에서 제명하기도 했다.

○ 조봉암 선생의 마지막 모습

홍 씨의 회고와 1959년 8월 1일자에 실린 그의 기사에 따르면 조 선생은 의연히 죽음을 맞았다. 그는 평소에 입던 모시 바지저고리에 흰 고무신을 신고 교수대에 앉았다. 그리고 유언을 남겼다. “별로 할 말은 없고 다만 이 세상에 고루 잘살려고 한 짓인데 결과적으로 죄를 짓고 가니 미안할 뿐이다. 남은 가족은 자신들이 알아서 잘살 터이니….” 홍 기자는 이를 두고 “인간의 최후로서는 너무도 짧았고 두 혈육에게 남긴 말 또한 지극히 간단했다”고 보도했다.

조 선생은 입회한 목사에게 설교와 기도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목사는 누가복음 23장을 읽으며 기도했다. 눈을 감은 채 듣던 조 선생은 곧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홍 기자는 “형을 집행한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런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며 “이것이 조봉암이란 인간의 최후의 표정이었다”고 적었다.

대법원이 조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52년 만에 무죄를 선고한 날인 20일 그는 그제야 비로소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했다.

“나는 조 선생을 존경하거나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좌파나 우파도 아니었습니다. 조 선생에 대한 판단은 훗날 역사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겐 현장을 보도해야 할 의무가 있었고 조 선생의 마지막 모습을 꼭 역사에 남기고 싶었을 뿐입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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