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보단 좀 늦어졌지만 후년쯤부터 연극에 주력할 겁니다. 이제 레퍼토리(희곡)가 10여 개 돼요. 1년간 제 작품만으로 무대를 꾸릴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주변에서 ‘왜 배고픈 연극판으로 가려 하냐’ 하면 ‘이젠 편하게 연극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집도 사고 싶다’고 답해요. 연극인의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할 자신도 있습니다.”
영화판에서 그만큼 연극에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연극은 고향”이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그는 영화감독으로 더 유명한 장진 씨(40)다. ‘간첩 리철진’(1999년) ‘킬러들의 수다’(2001년)부터 지난해 ‘퀴즈왕’까지 영화 10여 편을 연출했고 2005년 최다 관중을 동원했던 ‘웰컴 투 동막골’ 등 각본과 제작에 참여한 영화도 많다.
그런 그가 2002년 연극으로 먼저 선보인 ‘웰컴 투 동막골’ 이후 9년 만에 창작극 ‘로미오지구착륙기’를 들고 돌아왔다. 16∼20일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8회 공연한다.
9일 충무로의 한 영화사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희곡 쓴 지가 그렇게 오래됐는지 몰랐다”며 “짜릿하고 기대되고 스릴 있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 연극은 서울예대 89학번인 그가 대학 시절 참여했던 창작극 동아리 ‘만남의 시도’의 30주년 기념작으로 공연된다. 동아리 9기인 장 감독 외에도 ‘만남의 시도’는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배우 황정민, 정재영(이상 10기), 신하균(13기) 등이다.
연극은 미확인비행물체(UFO)가 재개발이 예정된 달동네에 불시착한 뒤 재개발이 백지화될 위험에 빠지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담았다. 그는 “한국에서 ‘집’이 갖는 상징성을 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상업영화에선 자제했던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을 SF장르를 통해 마음껏 풀어냈다는 것.
스스로 작가로 규정하는 장 감독에게 연극은 상상력의 출발이자 자양분이다. “초등학교 시절 한 유랑극단 공연을 본 뒤부터 연극에 빠졌어요. 중학교 때는 성당 친구들과 연극을 만들어 올리며 만드는 기쁨을 알게 됐죠. 고등학교 시절엔 연극만 250편쯤 봤지요.”
고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희곡을 썼던 그는 군 생활을 하며 쓴 희곡 ‘천호동 구사거리’가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고 1998년에는 영화 ‘기막힌 사내들’을 연출하며 활동영역을 넓혀 왔다. 그의 영화에서 대사가 스토리를 주도해 연극적이란 평가를 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작품 속 등장인물은 엉뚱하면서도 밝은데 한때 TV 개그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장 감독의 성향이 많이 반영됐다. “중학교 1학년 때 색약인 걸 알게 됐어요. 그 일 이후로 결과를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습관이 붙었어요. ‘넌 이게 무슨 색인지 모르지’라고 놀리면 ‘난 너희가 보지 못하는 색깔을 본다’고 응대하죠.”
요즘 연극계의 아쉬운 점을 물었더니 그는 “외유를 많이 한 사람으로 조심스럽다”면서도 “연극계도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 흥행에 대해 ‘거 봐 좋은 작품이니까’라고 하는 대신 ‘거 봐 유명 배우를 쓰니까’라고 반응하는 구조는 아쉽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진 뒤 얼마 후 장 감독이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공연 때 꼭 오세요.’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장진 감독은…
△출생: 1971년 2월 24일 △학력: 광문고-서울예술대 연극과 △희곡 데뷔: 1995년 ‘천호동 구사거리’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영화감독 데뷔: 1998년 ‘기막힌 사내들’ △주요 작품: <연극> ‘서툰 사람들’(2007) ‘세일즈맨의 죽음’(2005) ‘택시 드리벌’(2004) ‘웰컴 투 동막골’(2002) ‘박수칠 때 떠나라’(2002) ‘아름다운 사인’(1999) ‘매직타임’(1998) ‘허탕’(1995) <영화> ‘로맨틱 헤븐’(개봉 예정) ‘퀴즈왕’(2010) ‘굿모닝 프레지던트’(2009) ‘아들’(2007) ‘거룩한 계보’(2006) ‘박수칠 때 떠나라’(2005) ‘아는 여자’(2004) ‘킬러들의 수다’(2001) ‘간첩 리철진’(1999) ‘기막힌 사내들’(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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