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 상당 여수 성심종합병원 기부 약속 지킨 박순용 前 이사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8일 03시 00분


“직원-사회 덕에 병원 살려… 늦어져 미안할 뿐”

“23년 전 직원들과 지역사회에 했던 약속이 법적 분쟁으로 7년간 지켜지지 못해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게 돼 마음이 편안합니다.”

전남 여수시 성심종합병원을 운영해온 서구의료법인 박순용 전 이사장(69·사진)이 1000억 원에 이르는 병원 재산을 내놓았다. 그는 22일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새 이사장은 행정원장이었던 박종만 씨(62)가 맡았다. 장선희 간호부장(50)과 김승기 임상병리실장(54) 등 23년간 일한 직원들이 새 이사로 등재됐다. 박 전 이사장의 혈족은 아무도 이사를 맡지 않았다.

박 전 이사장은 1983년 설립돼 성인병원 등으로 불리다 부도가 난 이 병원을 1988년 인수했다. 취임식에서 “함께 노력해 병원이 정상화되면 이사장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004년 약속을 지키려 했지만 성심병원과 보건복지부 사이에 법적 분쟁이 불거지면서 병원 재산과 계좌가 압류됐다. 그는 “공매를 통해 병원을 인수했으나 당시 보건사회부(현 복지부) 담당자가 ‘예전 성인병원 측이 독일에서 차관 형태로 들여온 병원 건립비용 31억 원을 대신 갚는다는 차용증을 써야만 법인허가가 난다’고 해 사인을 한 것이 분쟁으로 비화됐다”고 설명했다. 복지부가 병원 측을 상대로 원금과 이자, 환차손을 합친 197억 원에 대한 채무변제소송을 제기하자 아무도 이사장 직을 맡으려 하지 않았다.

전남 여수시 둔덕동에 자리한 성심종합병원 등 서구의료재단 산하 시설 전경.성심종합병원 제공
전남 여수시 둔덕동에 자리한 성심종합병원 등 서구의료재단 산하 시설 전경.성심종합병원 제공
그의 약속 이행도 난관에 부닥쳤다. 계좌 압류로 직원들 월급도 주지 못할 형편이 되자 그는 2009년 2월 복지부 청사에서 “쓰지 않은 돈을 왜 갚아야 하느냐”며 자살을 시도했다. 이후 행정법원은 “이자와 환차손을 제외한 원금만 갚으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는 판결에 여전히 불만이 있지만 부채가 줄어 기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됐다.

성심병원은 10만 m²(약 3만 평) 규모의 터에 병원 간호학원 종합검진센터 어린이집 산업보건센터 산후조리원 등을 갖추고 있다. 박 전 이사장은 “꾸준한 투자로 병원 재산이 2004년 당시 400억 원이었으나 현재는 1000억 원을 웃돌고 있다”고 말했다. 흑자를 내던 병원이 법적 분쟁 여파로 적자를 기록했지만 분쟁이 끝나자 다시 흑자로 돌아섰다.

전남 나주시에서 8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박 전 이사장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무작정 상경해 고학으로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와 수도공대(홍익대 전신)를 졸업했다. 전기회사 직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전기시공업체 등을 하며 재산을 모았다. 힘든 사람들의 처지를 알아 남모르게 소외계층을 돕는 일이 많았다. 현재는 후학 양성을 위해 고향에서 영산중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박 전 이사장은 “적자 병원을 흑자로 돌린 것은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여수시민이기 때문에 병원을 그들의 몫으로 돌리는 것”이라며 “법적 분쟁이 끝나고 경영이 정상에 오르게 돼 아름다운 퇴장을 할 시기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남은 직원들이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병원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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