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복을 빕니다]신한은행 창립자 이희건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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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4일 03시 00분


日서 자수성가… 재일교포 돈모아 국내 첫 민자은행
외환위기 땐 일본에서 ‘국내 송금하기 운동’ 주도

신한은행의 창립자이자 정신적 지주인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사진)이 2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고인은 일제강점기였던 1917년 경북 경산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15세 때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의 한 무허가 시장에서 자전거 타이어 장사를 시작했다. 1955년에는 오사카 지역의 재일교포 상공인들과 함께 오사카흥은(大阪興銀)이라는 신용조합을 세웠고, 1974년 재일한국인본국투자협회를 만들었다. 1982년 7월에는 일본 곳곳에 흩어져 살던 재일교포 340여 명으로부터 출자금을 모집해 국내 최초의 순수 민간자본 은행인 신한은행을 창립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100억 엔을 모아 한국에 기부하는 등 고국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무궁화훈장을 받았다. 외환위기 때 한국이 외화 부족 상황에 처하자 일본에서 ‘국내 송금하기 운동’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1982∼2001년 신한은행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점포가 달랑 3개뿐인 ‘꼬마은행’으로 출발한 신한은행을 국내에서 수익성이 가장 좋고 사업 포트폴리오가 가장 안정적인 우량 금융회사로 키워냈다. 2000년 9월에는 신한은행의 일본현지법인인 SBJ은행을 설립함으로써 재일동포들의 꿈이었던 일본으로의 역(逆)진출을 실현하기도 했다. 그는 평소 임직원에게 “재물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고, 신용을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유족들은 23일 신한금융 주주총회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부고를 알리지 말라는 이 명예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일본에서 가족만 참석한 채 영결식을 마쳤으며 개별적인 분향을 받지 않기로 했다. 신한은행은 앞으로 유족들과 협의해 조만간 국내에서 추모식을 열 예정이다. 한동우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신한의 역사이자 조국을 사랑한 거목(巨木)이 졌다”며 “고인의 창업이념을 받들어 전 임직원이 심기일전해 신한금융그룹을 세계 일류 금융그룹으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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