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지진 신속대응팀장 이수존씨 외교부 장관 특별 표창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5일 03시 00분


“두번째 사는 인생… 웬만한 위기는 겁안나”
1995년 타이베이 대표부 근무 때 괴한에 피습… 죽음 문턱서 살아나

동일본 대지진 때 현지 고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를 방문한 이수존 신속대응팀장. 외교통상부 제공
동일본 대지진 때 현지 고등학교에 마련된 대피소를 방문한 이수존 신속대응팀장. 외교통상부 제공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약 33시간 뒤인 3월 13일 오전 1시 반. 외교통상부가 긴급 파견한 신속대응팀이 주센다이 총영사관에 도착했다. 총영사관에 모여 있던 교민 110여 명은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를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 공포로 떨고 있었다.

4일 만난 이수존 당시 신속대응팀장(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 심의관)에게 ‘무척 혼란한 상황이었을 텐데 두렵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기자수첩에 ‘대난불사 필유후복(大難不死 必有後福·큰 어려움을 당해 죽지 않으면 반드시 나중에 복을 받는다)’이라고 써 보여줬다. 자신의 삶이 ‘세컨드 라이프(두 번째 인생)’라고 말했다.

“죽을 뻔한 삶을 연장해 사는 거라 웬만한 위기엔 휘둘리지 않습니다. 현장에 도착해서도 겁나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대지진 때 신속대응팀장으로서 교민들의 안전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신속대응팀원, 주일 대사관, 센다이 총영사관 직원 50명과 함께 3일 김성환 외교부 장관의 특별 표창을 받았다. 그의 ‘죽을 뻔한 위기’는 무엇이었을까.

한국과 대만이 단교한 지 3년이 지난 1995년 3월 그는 주타이베이 한국대표부에 근무했다. 오전 3시경 집으로 들어가다 난데없이 나타난 괴한의 칼에 목을 찔렸다. 피가 솟구치는 목을 움켜잡은 그는 병원으로 실려 갔다. 길이 7cm, 깊이 2cm의 중상이었다. 수술 끝에 극적으로 회생했다.

“그때 병문안 온 중국 친구들이 써준 ‘대난불사 필유후복’을 삶의 신조로 간직하니 두려울 게 없습니다.” 작은 체구임에도 ‘강골’ 소리를 듣는 그의 힘은 그런 경험에서 나온 듯했다.

그는 팀원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명예’라고 다독였다. “팀원들도 집에서 걱정하는 전화를 많이 받았을 텐데 내색 한번 한 적 없습니다. 그게 고맙습니다.”

이 심의관은 2005년 신속대응팀 창설의 주역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 이후 그는 영국의 ‘신속배치팀(RDT)’을 벤치마킹해 신속대응팀 구축에 기여했다.

그에게 ‘후복(後福)’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침착하게 하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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