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옷을 입고 선물을 손에 든 신월분교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신월분교 학생들에게 22년째 어린이날 선물을 보내고 있는 손관수 서울 서초구 토목팀장은 이들에게 동화 속 키다리아저씨이자 산타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부평초교 신월분교 제공
올해도 아이들은 그의 선물을 기다렸고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아는 아이들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그를 ‘키다리 산타아저씨’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린이날을 하루 앞둔 4일 오후 강원 인제군 남면 부평초등학교 신월분교에는 한 꾸러미의 선물이 도착했다. 어린이날을 맞아 서울 서초구 토목과 손관수 토목팀장(56·사진)이 보낸 것. 손 팀장은 올해로 22년째 신월분교 학생들에게 매년 어린이날 선물을 보내고 있다. 이번 어린이날에도 학생 5명과 이곳 교사 직원 등 10명을 위한 옷을 선물로 보냈다.
손 씨가 신월분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 봄. 당시 이 분교 교사로 근무하던 지인을 만나러 가면서부터다. 열악한 시골학교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생각한 손 팀장은 이때부터 ‘5월의 키다리 산타’를 자처했다. 그해 손 씨는 어린이날에 맞춰 탁구대와 축구공 등을 사서 학교를 찾았다. 또 가을에는 분교 전교생 20여 명을 서울로 초대해 2박 3일 일정으로 국회의사당 63빌딩 놀이공원 등을 구경시켜 줬다. 이후 매년 어린이날마다 공책 크레파스 같은 학용품은 물론이고 축구화 트레이닝복처럼 아이들이 원하는 다양한 선물을 마련해 신월분교를 찾았다.
하지만 손 팀장은 2000년경부터는 직접 방문하는 대신 택배로 선물만 보냈다. 분교 교사와 학부모들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는 데다 선행을 하는데 굳이 얼굴을 알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손 팀장은 올해 옷 선물을 위해 미리 학생들의 키와 몸무게를 파악한 뒤 여기에 맞춰 일일이 옷을 골랐다. 그는 “치수는 물론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디자인과 색상을 고려하다 보니 옷을 고르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올해 선물을 마련하는 데 들어간 돈만 무려 100여만 원. 넉넉지 않은 공무원 봉급이지만 기뻐하는 아이들이 지을 웃음과는 비교할 바 아니다.
손 팀장은 “20여 년간 선물을 받은 아이가 200명 정도 되는 것 같다”면서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선물을 받고 즐거워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런 수고와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웃음을 지었다.
박광한 신월분교장은 “아이들이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 손 팀장의 얼굴도 몰라 안타까워하고 있다”며 “정말 동화 속 키다리아저씨와 산타할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 이날 모자 달린 티셔츠를 선물로 받은 박소영 양(10)은 “아저씨가 보내준 옷이 참 예쁜데 아저씨 얼굴도 함께 봤으면 좋겠다”며 “참 멋지고 자상하신 분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 팀장은 “20년 전 20명이 넘던 분교 학생이 이제는 5명으로 줄었다”며 “또래 아이들이 줄면서 적적해할지 모르는 애들에게 제 선물이 즐거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