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한인섭 교수, 군사정권 시절 인권변론 담은 책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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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8일 03시 00분


“홍성우 인권변론記… 사법 암흑기의 산 역사”
“1세대 인권변호사 홍성우씨 변론기록 보관 덕분에 가능”

‘이영희 상고이유서(78노4236), 피고인 김영일(일명 김지하) 최후진술서(75고합268).’

27일 찾아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인섭 교수(52·사진) 연구실에는 1970, 80년대 인권 변론기록과 녹음테이프 등 자료들이 수북했다. 한 교수는 이번에 1세대 인권변호사 홍성우 변호사(73)의 구술과 그가 보관해 온 방대한 시국사건 자료들을 토대로 당시 인권 변론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인권변론 한 시대’를 펴냈다.

한 교수는 2004년 초 아무리 변론을 해도 패소할 수밖에 없어 ‘사법 암흑기’로 불렸던 군부 독재시절 혼신의 힘으로 변론요지서를 썼던 홍 변호사가 변론 기록들을 지금까지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다. 홍 변호사는 “이들을(당시에 패소했던 피고인) 새로운 법정에 서게 하고픈 의지도 있었다. 결코 기록을 버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결국 한 교수는 2006년 10월에야 홍 변호사 사무실 지하 창고에 있던 변론 기록을 서울대 연구실로 가져와 분석에 돌입한다. 지하 창고에서 먼지가 쌓인 채 사장될 뻔한 인권 변론 기록이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총 1207건에 4만6000쪽. 정리되지 않은 기록만 1만 쪽이 넘었다. 한 교수는 2009년 초부터 지난해 2월까지 16차례에 걸쳐 홍 변호사와 대담을 했다.

책에는 인권 변론의 명암이 교차한다.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사건 기록에서는 어두웠던 인권 변론의 흔적이 보인다. 한 교수는 “리 교수 사건 1심 판결문의 경우 검찰 공소장과 판결문이 글자 수는 물론이고 글씨체까지 똑같은 일명 ‘정찰제 판결’이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담당판사의 배려 덕분에 공안 사건으로 잡혀간 시인 김지하의 ‘5대 명문장’으로 평가받는 법정 최후진술이 세상에 생생히 알려질 수 있었다”며 “적법 절차에 대한 사법부의 배려는 당대 법원이 법률과 양심의 틀 안에서 해낼 수 있는 최대치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책에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김문수 경기도지사, 이재오 한나라당 의원 등 현역 정치인들의 청년시절도 나온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비밀리에 인권변호인들을 돕는 내용도 나와 흥미를 더한다. 출판기념회는 30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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