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대한제국 당시 주러시아 공사를 지낸 이범진 선생(1852∼1911·사진)을 ‘8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99년 주러 공사로 부임한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이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각국 주재관들이 소환되자 이에 응하지 않고 러시아에 남아 국권회복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상설, 이준 선생이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에 앞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자 이들이 헤이그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보호를 요청했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전해들은 뒤 이듬해 1월 자결했다.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 ‘호국인물’ 남상덕 참위 ▼
전쟁기념관은 구한말 군대 해산에 분개해 일본군에 항전하다 순국한 남상덕 참위(1881∼1907)를 ‘8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선생은 무관학교를 졸업한 뒤 대한제국 군대에 견습 육군 보병 참위(지금의 소위)로 임관했다. 대한제국 군대가 1907년 8월 일제의 강압으로 해산되자 선생은 시위대 봉기를 주도했다. 남대문 시가전에서 부하 1000여 명을 지휘해 일본군 300여 명을 사살했다. 그러나 빈약한 무기와 부족한 탄약으로 싸우다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순국했다. 선생의 죽음은 이후 의병 봉기의 도화선이 됐다. 정부는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 ‘6·25영웅’ 안창관 대령 ▼
국가보훈처는 8월의 6·25전쟁 영웅으로 안창관 해병대 대령(1924∼1971·사진)을 선정했다. 평남 평원에서 태어난 안 대령은 1948년 해사 후보생 특별교육대 2기생으로 임관한 뒤 해병대 창설 요원으로 합류했다. 6·25전쟁 때 해병 중대장으로 경남 마산으로 향하는 북한군 1개 정찰대대를 기습 공격해 90여 명을 살상했다. 이는 6·25전쟁 발발 후 거둔 최초의 대승리로 전 부대원은 1계급 특진했고, 안 대령은 1952년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통영상륙작전에서는 적 500여 명을 사살해 ‘귀신 잡는 해병’이란 별명을 얻었다. 휴전 후 제2상륙전단장, 해병대사령부 군수국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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