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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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대선후보 1위 실감안나… 직업정치요? 엄두가 안 나서…”

5일 부산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그는 “직업정치를 할거냐 말거냐”라고 묻는 대목에서 “자꾸 몰아가지 말라, 나는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휴가 중인 데다 “여러가지가 조심스럽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한 그를 어렵게 설득해 만났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5일 부산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그는 “직업정치를 할거냐 말거냐”라고 묻는 대목에서 “자꾸 몰아가지 말라, 나는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휴가 중인 데다 “여러가지가 조심스럽다”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한 그를 어렵게 설득해 만났다. 부산=최재호 기자 choijh92@donga.com
최근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58)의 지지율 상승세가 뚜렷하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접전 양상이거나 아예 야권 1위로 나온 곳도 있다. 야권 통합모임 ‘희망2013 승리 2012원탁회의’(7월 26일 국회 귀빈식당)에서도 그의 행보에 관심이 쏠렸다. 그가 낸 책 ‘운명’은 발간 두 달 만에 15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인터넷에는 ‘젠틀 재인’ ‘문재인 대통령을 기다리는 사람들’ 등 팬 카페 5개가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할까. 휴가 중인 그를 5일 오후 부산 변호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직업 정치인이 아닌데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노 대통령 서거 2주기에 맞춰 책을 낸 것뿐인데. 그런(대선주자 같은) 목적이나 준비를 위해 내놓은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인기가 오르는 것은 좋은 일 아닙니까.

“제 본연의 모습을 넘어선 현상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책에는 살아온 이야기도 많이 담겨서 회고록 느낌이 납니다.

“원래는 참여정부 일을 많이 쓰려고 했는데…. (개인사 공개는) 민망한 일이었습니다.”

―본래 법대보다는 역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는 대목이 있던데….

“지금도 역사책들을 무의식적으로 많이 봅니다. 역사책을 많이 보면 자연히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같은 삶의 태도나 이런 것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거 같죠?”(그는 동의를 구하듯 물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이야기가 나오자 잔잔하던 톤과 화법은 단호하게 바뀌었다.)

―역사적 관점으로 참여정부 5년을 평가한다면….

“정책의 공과야 있겠지만 민주 복지 평화를 향한 가치는 한국 역사가 발전돼 가는 방향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MB(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방향을 거꾸로 뒤집었습니다. 민주주의를 후퇴시켰고 복지를 후퇴시켰고 남북관계는 전쟁을 두려워하는 수준까지 갔잖아요.”

―참여정부도 ‘과(過)’가 많지 않았습니까.

“참여정부 때 민주주의가 궤도 위에 올라섰기 때문에 경제 살리기를 통해 잘살게 할 수 있다는 (MB 정부) 주장에 (국민이) 귀 기울이게 된 겁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관심 갖고 가꾸지 않으면 금세 퇴보한다는 것을 이제 다 느끼게 됐습니다.”

―요즘엔 오히려 민주주의가 과잉이어서 법과 질서가 무너진 측면도 있다고 보는데요.

“민주주의란 게 공동체 내 다양한 의사가 자유롭게 소통되는 것이죠. 지금 이 정부의 민주주의가 그런 민주주의입니까. 국민이 아무리 이야기해도 안 듣지 않습니까.”

기자는 참여정부의 국정 책임자 중 한 사람에게서 객관적인 평가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질문이든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말을 맺었다.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참여정부 비판과 관련한 지적에 대해서는 민감해했다.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질문을 바꿨다.

―차기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통합과 상생의 리더십으로 가야죠.”

―뭘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은 다른 생각을 받아들여야죠. 청와대 있을 때 조사해 보니까 서구에서 보수 진보정권의 교체주기가 한 5, 6년 됩디다. 역사가 그렇게 지그재그로 흘러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나 한나라당의 행태는 진보 쪽은 꼭꼭 밟아서 재기를 불가능하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 같아요. 결국 밟는 쪽이 어려워집니다. 진보도 차기에 집권하게 된다면 앙갚음하겠다든지 해서는 안 됩니다. 진짜 복수는 되갚는 게 아닙니다.”

―현실정치에서 직접 보여줄 생각은 없습니까.

“허허,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정치이야기가 나오자 민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나는 정치 안 한다” “정치체질이 아니다”라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내고 야권 통합을 위해 뛰는 그 자체가 정치 행위 아닙니까.

“정치에는 현실의 영역이 있고 시민운동의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자라났기 때문에 정치적 시민운동, 시민정치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하는 것도 시민정치고, 원탁회의도 시민정치고. 그런 걸 정치라고 한다면 정치하는 것 맞습니다. 다만, 제가 선을 긋고 있는 것은 직업 정치를 말하는 건데 거기는 엄두가 안 납니다. 제가 능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실 정치에 대해 염증이나 혐오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정치는 절대 혐오하거나 냉소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삶을 본질적으로 규정하는 게 정치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당위와는 다릅니다. 정치 현실은 좀 다른 세상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보통사람의 사고방식과도 너무 다르고 행태도 다르고. 오히려 다르면 다를수록 더 각광받는 듯한…. 기본적으로 권력투쟁이랄까, 마키아벨리즘, 냉혹한 것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좋은 뜻, 선한 의지만 갖고 하기에는 잘 헤쳐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정치가 아름답고 좋으면 누구나 다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말한) 정치를 바라보는 내 눈이 특별하지 않을 겁니다. 아마 보통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할 겁니다.”

―왜, 그런 보통 사람들이 나를 지지할까. 왜 나한테 그런 험악한(웃음) 것을 하라고 할까 그런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어떻든 정권교체가 절박한 과제인데 이대로 가다가는 (야권이) 질 것 같은 걱정이 크죠. 그런 과정에서 다른 대안을 찾게 되는 거고. 아마 제가 (정치를) 안 해 봤기 때문에 기성 정치인과 뭔가 다를 거라는 기대를 하는 거겠죠. 그런 기대는 저도 잘 알지만 다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느냐….”

―‘문재인식’의 정치를 할 수도 있지 않나요.

“제가 지금 나서면 이긴다, 그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쨌든 현재 (야권이) 각개약진해서는 한나라당의 강한 대세론을 넘어서기 어렵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는 대목이고. 따라서 지금 중요한 것은 제가 나서느냐, 안 나서느냐는 게 아니라 야권과 민주개혁 진영이 힘을 모아 한나라당하고 일대일 구도를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하는 일이 그것이고요.”

―야권 통합이 쉬울까요.

“어렵기 때문에 효과가 있는 거죠. 그 어려운 일을 해내면 국민이 희망을 걸게 될 겁니다.”

―(문 이사장에게) 권력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어요.

“권력의지라는 말의 뜻을 잘 모르겠는데요. 권력욕? 권력에 대한 욕심? 욕심의 관철을 위해서 올인하는? 그런 것을 말한다면 없는 거 확실하죠. 권력의지가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현실 정치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의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어떻든 그런 면에서 나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를 위한 권력의지인지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나를 위한 것이냐, 나라를 위한 것이냐.

“역사 발전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 (권력의지보다) 소명의식이란 말이 적당할 듯합니다.”

―소명의식은 있나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가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나도 뭔가 기여하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은 없습니다.”

계속된 ‘정치’ 질문에 언짢은 표정까지 스쳤다. 분위기를 바꿨다.

―책에 보면 ‘행복’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자연 속에서 노후를 편안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도 많이 비치고요. 하지만 지금의 삶이 책 제목대로 ‘운명처럼 던져졌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운명론자는 아닌데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참여정부를 그만뒀을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심신이 모두 크게 지쳤고 정권 재창출 실패의 책임을 모두 우리에게 지우는 상황이었고요. 참담했습니다. 청와대 나와서는 이제 그런 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유, 평화, 안식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골로 갔고(그는 2008년 2월 경남 양산 산골짜기로 이사했다)…. 아마 대통령님의 서거라는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렇게 살았을 겁니다.”

―책의 마지막 ‘당신(노무현)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는 문장을 두고 말이 많던데요.

“단지 끝마무리를 멋있게 하려고 쓴 건데(웃음).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고요. 대통령님이 퇴임 후 하고 싶어 했던 진보적 민주주의 연구와 담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을 잇겠다는 뜻입니다.”

―특전사 복무도 화제가 됐어요(그는 강제 징집당해 특전사령부에서 공수병 폭파병으로 복무했다).

“(멋쩍게 웃으며) 민정수석 하면서 사람 뽑으려고 검증을 하는데, 이른바 상류사회, 주류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군대 안 간 사람이 너무 많아 놀랐습니다. 진정한 보수는 헌신하고 봉사하고 자기희생을 하는 게 아닐까요. 공적인 의무에 솔선수범해야 하는데 돈의 힘, 권력의 힘으로 의무는 요리조리 피하고 지도자입네 하면 국민이 승복하겠습니까.”

―요즘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특전사 시절 특전사령부 복무시절 사진. 비행기 낙하 훈련 직후 찍은 것이라고 한다. 가교출판 제공
특전사 시절 특전사령부 복무시절 사진. 비행기 낙하 훈련 직후 찍은 것이라고 한다. 가교출판 제공
“제 경우 실패의 경험들, 혹독한 가난, 대학입시 실패, 서울대 같은 명문대 실패, 판사 임용 실패, 이런 것들이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하고 지혜를 깨닫게 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습니다. 한순간 실패나 좌절로 보이는 것들이 나중엔 약이 된다는 말을 꼭 해주고 싶네요.”

―노 대통령 서거 발표부터 장례식을 치르기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여줘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겉으로만 그랬습니다. 침착해야 한다, 침착해야 한다, 자기 주문을 하면서 안간힘을 쓴 거죠. 제가 무슨 대단한 인품이 되어 갖고 그런 건 아니고요….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그는 내상(內傷)이 깊어보였다. 그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 한과 응어리로 남은 듯해 보였다. ‘문재인의 정치’를 원하는 민심 한켠에는 그를 통해 야권통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통합을 바라는 목소리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는 과연 그것을 해낼 수 있을까. 그가 생각하는 ‘문재인의 운명’과 국민이 생각하는 문재인의 운명은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부산에서

angelhuh@donga.com 
:: 문재인은 누구 ::

경희대 법대 재학 시절 유신 반대 시위로 구속돼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법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졸업했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임용에서 탈락하자 부산으로 가 변호사를 시작하면서 당시 노무현 변호사와 인연을 맺었다.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내다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그만두고 네팔 산행 중 대통령 탄핵소식을 듣고 변호에 나섰다. 2005년 청와대로 다시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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