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고향으로… 弔旗로 맞이한 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2일 03시 00분


6·25 전사 제임스 머리 상병
웨스트버지니아서 장례식

제임스 새뮤얼 머리 상병 유해의 귀향을 추모하기 위해 걸린 미국 성조기가 20일 웨스트버지니아 주정부 청사 돔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다. 사진 출처 더 스테이트저널
제임스 새뮤얼 머리 상병 유해의 귀향을 추모하기 위해 걸린 미국 성조기가 20일 웨스트버지니아 주정부 청사 돔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다. 사진 출처 더 스테이트저널
20일 미국 워싱턴DC 서쪽의 웨스트버지니아 주에선 모든 공공건물의 성조기와 주 정부기가 조기로 게양됐다.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1951년 사망한 한 미군 용사의 유해가 60년 만에 고향인 웨스트버지니아 주 신스턴에 묻히는 것을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전사 60년 만에 고향의 품에 안긴 주인공은 제임스 새뮤얼 머리 상병(사진). 17세에 입대한 그는 1946년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6·25전쟁에도 참전했다. 3대대 38보병부대 본부 소속이었던 머리 상병은 1951년 2월 적군에 생포돼 북한 황해도 수안에 있는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참혹한 포로생활을 하던 머리 상병은 같은 해 4월 22일 연합군이 포로수용소 인근 보급 창고를 폭격할 때 치명상을 입고 숨졌다. 1928년 5월 14일생인 그는 사망 당시 22세였다. 그의 시신은 당시 사망한 다른 포로들과 함께 큰 구덩이에 묻혔다.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았던 머리 상병의 유해는 미 국방부가 1990년대 북한으로부터 넘겨받은 미군 유해들에 대한 DNA 검사로 끈질기게 추적한 끝에 확인됐다. 그는 지난해 말 전사자로 최종 확인됐다.

미 국방부는 머리 상병의 유해를 신스턴으로 옮겨 이날 오후 1시 장례식을 치렀다. 팀 셔틀워스 목사 주재로 친지들이 참석한 가운데 최고의 예우를 갖춘 자리였다. 부모와 형제들은 이미 모두 사망했지만 조카들이 머리 상병의 유해를 맞이했다.

얼 레이 톰블린 웨스트버지니아 주지사는 19일 포고령을 내고 장례식이 열리는 당일 주 전역의 공공건물에 성조기와 주정부기를 조기로 게양하도록 했다.

인터넷에서도 머리 상병 추모의 글이 이어졌다. 웨스트버지니아의 켈리 카펜터 씨는 “이제 고향에서 편안히 잠들기 바랍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이라고 추모했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스미스 가족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정말 기쁩니다”고 적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6·25전쟁에서 미군 2000여 명이 포로로 잡혔다가 사망했다. 이들을 포함해 미군 7990여 명이 여전히 실종자 상태로 남아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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