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면 여성축구회 감독인 국양환 씨(62·수북면 주민자치위원장)가 물병을 든 손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여성축구회장인 김덕자 씨(56)는 “연습할 때는 (헛발질을) 안 했는디 오늘은 왜 그런 다냐”라며 마음을 쫓아가지 못하는 몸을 탓했다. 이날 경기는 6월 결성된 수북면 여성축구회의 공식 데뷔전으로 상대는 같은 면 이장들로 구성된 이장협의회 축구단이다. 명절에 열리는 ‘빅매치’를 보려고 주민들은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내고 나왔고 모처럼 고향을 방문한 사람들도 운동장을 찾아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15분을 뛴 전반전은 1 대 1. 후반전에 선수를 대폭 교체한 여성축구회는 이장단을 몰아붙여 2 대 1로 이겼다. 하지만 이날 경기는 승패를 떠나 한마디로 축제 분위기. 여성축구회에는 시누이와 올케, 동서가 함께 뛰는가 하면 이장팀의 남편은 상대팀의 아내와 공을 잡기 위해 서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여성축구회원은 모두 75명. 30대 후반∼60대 초반으로 모두 과수와 벼농사를 짓는 농부(農婦)들이다.
최명기 고성마을 이장(60)은 “아내가 연습을 열심히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렇게 잘 뛸 줄은 몰랐다”며 “내년에 또 하자고 할까 봐 겁난다”며 웃으며 말했다.
4800여 명이 사는 수북면은 축구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망국의 한을 달래고 주민 결속을 다지기 위해 1914년부터 수북공립심상고등소학교 운동장에서 축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1930년대 말부터 4, 5개 마을에서 열린 축구대회는 1940년대 초 일제의 강제 징병과 6·25전쟁으로 잠시 명맥이 끊겼다가 1956년 부활됐다. 대회는 홍수 등 자연재해로 몇 차례 중단된 것을 빼고는 거의 매년 추석 때 열리고 있으며 올해가 49회째다.
이런 축구에 대한 열정이 6월 ‘아줌마 축구단’을 결성하게 된 것. 축구단 창단은 면 주민자치위원장인 국 씨가 주도했다. 국 씨는 “마을의 전통도 있는 데다 1년 내내 농사일 때문에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는 여성들의 건강을 위해 축구를 제안했다”며 “처음엔 다소 낯설어했지만 다들 재미를 붙인 뒤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운동에 열심이다”고 말했다.
연습 과정도 쉽지는 않았다. 대부분 농사를 짓는 까닭에 새벽에 들에 나가 오후 늦게야 귀가하기 때문. 이 때문에 주로 일요일 저녁에 모여 2, 3시간씩 연습을 해야 했다. 드리블과 롱패스 등 기술을 익히며 자신감을 얻은 회원들은 드디어 지난달 말 이장단협의회에 ‘추석 때 한판 붙자’며 도전장을 던졌다. 이장단협의회는 처음 “이기면 본전이고 지면 창피”라며 고사했지만 ‘시합을 기피한다’는 주변의 눈총에 밀려 도전을 받아들였다.
여성축구회 유동숙 씨(55)는 “처음에는 발목과 무릎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실수 연발이었다”며 “이제는 남편이 공 차러 안 나가느냐고 채근할 정도”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