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건우씨 ‘섬마을 콘서트’ 北포격 연평도서 막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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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9일 03시 00분


건반의 선율로 연평의 아픔을 어루만지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17일 서해 바다를 굽어보는 연평도 조기역사박물관 앞 야외에서 연주하고 있다. 이 ‘섬마을 콘서트’는 연평도에서 처음 열린 음악회로 600여 명이 객석을 메웠다. MBC 제공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17일 서해 바다를 굽어보는 연평도 조기역사박물관 앞 야외에서 연주하고 있다. 이 ‘섬마을 콘서트’는 연평도에서 처음 열린 음악회로 600여 명이 객석을 메웠다. MBC 제공
북한이 쏘아올린 포탄의 그림자로 얼룩졌던 바다에 영롱한 피아노 선율이 넘실거렸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17일 인천 옹진군 연평도 조기역사박물관 앞 야외에서 ‘섬마을 콘서트’를 열었다.

연주 전에 만난 백 씨는 북한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다에는 남북을 가르는 선이 없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땅에 어떻게 (포탄을)….”

연평도는 지난해 11월 북한의 포격으로 인한 상흔이 여전하다. 복구공사에 사용할 목재를 실은 트럭과 중장비가 해변도로를 수시로 오갔다. 포격 때 녹아내린 오토바이가 아직 뒷골목을 지키고 있다. 한 주민은 “그때 일을 기억하면 여기서 못 산다. 망각의 힘으로 버틴다”고 한숨을 쉬었다.

조기역사박물관이 있는 등대공원에 오르면 눈에 바다가 가득 담긴다. 시선을 멀리 두면 12km가량 떨어진 황해남도 강령군이 어슴푸레 보인다. 연평도는 서해 5도의 최북단 섬은 아니지만 북한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섬이다.

연주회 1시간 전부터 등에 갓난아이를 업은 할머니, 과자봉지를 손에 든 초등학생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와 슬리퍼에 트레이닝복 차림인 아저씨…. 약 600명이 이곳을 찾았다. 오후 6시 반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콘서트가 시작됐다. 연평도에서는 처음으로 열린 음악회다.

백 씨는 말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쇼팽의 ‘뱃노래’와 리스트의 ‘물 위를 걷는 파올라의 성 프랑수아’, 드뷔시의 ‘기쁨의 섬’,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등 물을 연상시키는 음악들이 출렁거리듯 귓가를 적셨다. 바람소리도 음악과 하나가 됐다. ‘월광’의 마지막 화음과 함께 큰 박수와 “앙코르” 소리가 쏟아졌다. 백 씨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리스트의 ‘잊혀진 왈츠’로 환호에 답했다.

가족 다섯 명이 다같이 연주회에 왔다는 연평도 주민 신순자 씨(58)는 “우리를 위로해 주려고 먼 곳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맙다. 음악이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박은혜 양(13·연평중 1)은 “마음이 따뜻해진다”고 수줍게 웃었다. 재미변호사 이종연 씨(83·경기 용인시 기흥구)는 “고향 황해도가 그리워 이곳을 찾았다가 콘서트에 참석했다. 북한이 포를 쏘아올린 바다를 바라보며 백 씨가 연주하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백 씨는 “음악을 통한 인간과 인간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연주 중 언뜻언뜻 본 관객들의 얼굴이 점점 더 환하게 빛났다”며 미소 지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의 연습실 벽에는 커다란 한국 지도가 붙어 있다. 부인인 배우 윤정희 씨는 “피아노 소리가 멈춰 문을 열어보면 지도에 동그라미 쳐 둔 섬에 한참이나 빠져 있곤 했다. 고국의 섬에서 연주하는 일이 그이의 오랜 소원이었는데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윤 씨는 주민들에게 “용기와 인내를 가지면 더 좋은 연평도가 될 것이다. 필요하면 언제든 저희를 불러 달라”고 말했고 주민들은 감사의 인사로 화답했다.

다음 섬마을 콘서트는 21일 전북 부안군 위도 위도해수욕장, 24일 경남 통영시 욕지도 도동항에서 열린다.

연평도=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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