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 쓴 김광기 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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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7일 03시 00분


“美 중산층도 생존 위협… ‘Occupy 시위’ 가세땐 문제 커질 것”

미국 사회 비평서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펴낸 김광기 교수는 “현 미국 사회 위기는 경제난이 직접적 계기가 되긴 했지만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정과 부의 편중으로 누구라도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깨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미국을 대표하는 정직과 신뢰 도덕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미국 위기의 징후를 읽는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미국 사회 비평서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를 펴낸 김광기 교수는 “현 미국 사회 위기는 경제난이 직접적 계기가 되긴 했지만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행정과 부의 편중으로 누구라도 꿈을 펼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깨지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라며 “미국을 대표하는 정직과 신뢰 도덕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미국 위기의 징후를 읽는다”고 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꼭 한 달 전 9월 17일 미국 뉴욕 맨해튼 증권거래소 인근 주코티 공원에서 20대 청년 300여 명이 모여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시위를 할 때만 해도 일부 청년 백수들의 분풀이 정도로 여겨졌었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에서 처음 일어난 시위라지만 세계 최고 부자 나라이자 자본주의 최첨단을 걷는 미국에서 ‘부(富)’를 비난하는 시위가 일어난다는 것을 상상이나 했으랴.

최근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없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을 펴낸 김광기 교수(47·경북대 일반사회교육과)는 “미국은 이제 우리가 알고 있던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13일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종차별 한번 당한 적 없고 영어 못한다고 왕따 당한 적 없이 교수와 동료 학생들의 배려로 즐겁게 학위를 마칠 수 있게 해준 미국을 두 번째 고향이라고 생각했었다”던 그가 ‘휘청거리는 미국’에 주목하게 된 것은 2008년 안식년 때 시애틀에 1년 체류했던 게 결정적 계기가 됐다.

“아파트 잔디밭이 개똥 천지였다. 처음엔 (내가 공부했던) 동부하고 서부의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주일 뒤 뉴스를 보니까 전국이 마찬가지였다. 뉴햄프셔 주는 개똥 유전자를 추적해 주인을 찾겠다고 할 정도였다. 며칠 뒤 렌터카를 빌릴 기회가 있었는데 스페어타이어를 훔치고 차를 돌려줄 때 기름 대신 물을 채워 넣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이라는 사장 이야기를 듣고 정직과 신뢰가 바탕인 미국 정신이 무너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이번 월가 시위만 해도 그렇다. 미국도 부를 질투하는 문화가 있다니….

“미국엔 부를 존경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다. 남 잘사는 것 보면서 나도 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이 있는 사회였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이민자들의 로망(꿈)이 미국 아니었나. 하지만 지금 미국 중산층들은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건강한 자본주의란 이런 것(부의 편중)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학생들이 시작한 시위에 노조까지 가세했는데 일반 중산층까지 가세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거다.”

―미국은 법도 엄하고 준법정신도 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익집단 간의 충돌을 시위가 아닌 제도 내에서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 범퍼(완충)가 강한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데….

“확실히 미국인들은 제도에 순응적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이다 보니 시위 같은 극단적인 방식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자기주장을 펼 수 있었다. 하지만 9·11테러 이후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미디어는 저널리즘보다는 광고주를 더 많이 생각하게 됐고 그럴수록 비판 기능은 사라졌다. 신문 구독률이 떨어지는 것도 큰 문제다.”

김 교수는 “언론 자유가 줄고 자본의 영향력은 더 강해지고 이런 상황에서 실업자는 넘쳐나니 결국 청년들이 거리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보스턴 유명 사립대 로스쿨 졸업 학생이 ‘학위 돌려 줄 테니 학비 돌려 달라’고 소송을 냈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2009년 9월 29일자 뉴욕포스트는 ‘청년실업률이 53.4%로 젊은이 2명 가운데 1명이 놀고 있다’고 했다. 사실이라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이다. 미국에서 청년들의 분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그는 “여기에 호주머니와 은행에 모아둔 돈 없는 중산층은 직장과 살던 집에서 쫓겨나고 있다. 그들의 친척 친구들도 사정이 비슷하다. 이들이 기댈 최후의 보루인 국가도 빈털터리다. 요즘 미국엔 정치사상가 토머스 홉스가 말한 ‘만인 대 만인의 투쟁’ 같은 징후가 엿보인다”며 “이런 상황은 풍요로운 시절에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한 미국인 자신들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고 했다.

“1992년에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만 해도 낡은 옷차림의 대학교수들을 보면서 있어도 있는 척을 안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존경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수중에 현찰이 없어 검소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다들 겉으로는 번듯한 집, 차를 갖고 있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빚(모기지)으로 꾸려가는 가불인생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한마디로 앞으로 월급이 계속 나온다고 생각하고 미리 쓰는 거다. 미국 사회는 빚내는 것을 부추겨온 사회다. 빚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신용도가 높다고 평가받았을 정도니까.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불경기로 임금이 줄거나 실직이 됐을 때는 바로 파산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미국 가정이 저축보다 소비 지향으로 간 데에는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이 세금을 더 내는 세제와도 관련이 깊다”고 전했다.

“이를테면 사글세는 연말정산 공제가 안 되지만 집을 사는 사람들의 경우엔 연간 상환한 원리금에 대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집값의 20%만 내고(다운 페이) 나머지는 20, 30년에 걸쳐 갚기 때문에 사글세를 내는 사람보다 이 사람들에게 세제 혜택을 줄 필요가 있다는 발상에서 나온 거다.”

여기에 모럴 해저드까지 겹쳐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대출금 이하로 집값이 떨어질 경우 집을 포기하면 나머지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당초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인데 경제위기로 악용되면서 너도나도 집을 포기했고 이 피해는 고스란히 은행들이 떠맡았다. 그리고 파산한 은행을 위해 세금이 대거 들어가는 악순환이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빚잔치는 정부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2009년 여름 출장 때 본 건데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캘리포니아 교도관 연합’이 전면광고를 냈다. ‘아무 대책 없이 재소자 1만9000명을 길거리에 쏟아 부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주지사를 향한 비난 광고였다. 교도소 재정 때문에 재소자들을 조기 석방한 것에 대한 교도관들의 항의였다. 미국 CBS에 따르면 현재 주 정부들의 총 재정적자를 합하면 5000억 달러(약 600조 원)에 이른다. 선심성 공약을 남발한 무책임한 행정 탓이다. 캘리포니아 주는 2009년 교도소, 콘서트홀, 놀이공원을 팔았고 애리조나 주도 주의회, 대법원 청사를 팔고 장기이식 수술 환자에게 지급하던 의료비 보조를 끊었다.”

김 교수는 “정부 재정파탄의 최고 피해자는 공교육”이라고 했다.

“교사가 해고되니 주 4일 수업을 하고 한 반 정원이 기존 15∼20명 선에서 30명을 넘었다. 내 친구 딸이 다니는 학교에서는 학년이 다른 학생들이 같은 교실에서 배웠다. 초등학생 내 딸도 시애틀에 살 때 미술교사가 해고되는 바람에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다. 공교육이 망하니 돈 있는 사람들은 사립학교로 가고 교육격차는 더 벌어지고…. 미국도 이제 학벌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다.”

―직업도 학교도 한곳으로 쏠리지 않는 게 미국 아니었나.

“옛날이야기다. 월가의 일확천금이 쏠림을 낳았다. 미국 대졸자 평균 임금이 5만 달러(약 6000만 원) 정도다. 10만 달러 넘으면 우리 식으로 억대 연봉이다. 그런데 월가에서 30대 금융인이 받는 연봉은 거의 20만 달러(약 2억4000만 원)에 달하고 보너스는 그 두 배가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명문대를 졸업했다. 명문대 졸업장은 고액 임금의 보증수표가 됐다. 파이 자체는 커지지 않고 소수가 독점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보니 곧 사교육 열풍으로 이어졌다.”

그는 “책을 내고 반미(反美)라는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내가 어떻게 반미일 수 있는가. 지금 미국의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안타까워 책을 쓴 거다. 이제 친미냐 반미냐가 아니라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미국, 우리의 롤 모델이었던 미국이 흔들리는 시대라는 것, 그러니 우리도 자성하고 돌아보아야 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휘청거리는 미국의 현주소

김 교수가 책에서 다양한 출처를 통해 밝힌 미국 중산층의 위기는 깊다. 책 내용을 정리해본다.

○ 빈부격차

지난해 7월 15일자 경제전문 사이트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01∼2007년 소득 증가분의 66%를 상위 1%가 차지했다. 회사 평사원이 받는 월급과 고위 임원이 받는 봉급 차이는 1950년대 1 대 30에서 2000년 이후 1 대 300∼1 대 500으로 커졌다. 중산층이 줄어든 2009년에도 집을 제외하고 자산이 500만 달러(약 60억 원) 이상인 부자는 전년보다 17% 늘었다. 하버드대 제프리 프리든 교수는 “2002∼2007년만 보더라도 상위 1%의 소득증가율은 60%인 데 비해 나머지 99%의 소득증가율은 6%밖에 안 된다. 이는 99%에게 악재가 닥쳐서라기보다 판 자체가 상위 1%에게 유리하게 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불안한 노후

피고용자복지조사연구소가 2010년 3월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의 43%가 은행계좌에 1만 달러(약 1200만 원) 미만의 잔액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노후대비 연금저축을 하지 않는 이는 36%, 어떤 형태로든 노후를 위해 소액이라도 저축해야 한다는 사람은 69%(2009년 75%)였다. 잔액이 1000달러(약 120만 원) 미만인 사람도 전체 인구의 27%에 달했다. 미국인 중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사람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 끼니 걱정

농무부에 따르면 2010년 4000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식비무상지원(푸드 스탬프)을 받았다. 역사상 가장 많았다. 끼니 불안의 직격탄은 아동에게 집중됐다. 같은 해 미국 어린이의 21%(1560만 명)가 최저생계비 이하를 버는 가정에서 양육되고 있다. 20년 사이 가장 높은 수치다. 미국인 중에는 자급자족을 위해 텃밭에 닭을 키우는 사람까지 등장했는데 로스앤젤레스 시의회는 지난해 9월 집에서 키우는 수탉을 한 마리로 제한하는 조례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 실업, 파산, 노숙

2009년 인구통계국이 밝힌 빈곤율은 13.2%(3980만 명)이지만 국립과학원(NAS)은 15.8%라고 했다. 이는 구직 포기자까지 합친 실질실업률 17∼18%와 거의 일치한다. 미국에서는 실업과 동시에 빈곤층으로 추락할 확률이 높다. 2009년 개인과 기업의 파산 건수는 총 143만 건으로 2008년보다 32% 증가했다. 주택도시개발부에 따르면 2009년도 미국 노숙인은 156만 명이고 노숙가구(가구당 평균 3명)도 17만 가구나 된다.
◇ 김광기 교수는


―성균관대 사회학과에서 학사(1983∼1987년)와 석사(1987∼1989년)

―하와이주립대에서 박사과정(1992∼1994년)

―보스턴대 사회학과에서 박사(1994∼1999년)

―2005년∼현재 경북대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저서 ‘사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뒤르켐 & 베버’ ‘뒤르케임을 다시 생각한다’(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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